정부가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을 발표 하루 전에 사실상 백지화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 "올해 안에 건강보험료 개선안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당초 오늘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올해 개편안을 만들지 않으면 박근혜정부 임기 내 다시 추진하기는 어렵다. 내년 총선, 후년 대선 등 정치일정을 감안할 때 그렇다. 개혁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현행 건보료 부과 체계는 불합리하다. 상당한 소득과 재산이 있어도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는 건보료를 한 푼도 안 낸다. 월급 외에 다른 소득이 많아도 직장가입자는 월급에 한해 건보료를 낸다. 똑같은 소득과 재산이더라도 지역가입자의 부담은 직장인보다 훨씬 무겁다. 정부가 2013년 기획단을 꾸려 개편 작업에 나선 것은 바로 이 같은 문제점을 개혁하자는 뜻에서였다. 개편의 핵심은 부과 방식을 소득 중심으로 바꿔 어려운 사람들의 보험료는 줄여주는 대신 월급 외에 소득이 많은 직장가입자와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의 부담은 늘리는 것이다. 지난해 생활고로 자살한 '송파 세 모녀'는 매달 5만140원을 건보료로 냈다. 반면 재산 5억원에 연간 수천만 원 연금소득이 있는 김종대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부인의 피부양자로 건보료를 하나도 내지 않게 된다고 고백했다. 이 같은 모순을 해소하자는 게 건보개혁이다. 하지만 정부는 '공평하고 합리적 개편' 약속을 저버렸다. 논의 자료가 2011년 것으로 현실에 맞지 않고, 건보료 인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군색한 변명이다. 최근 자료로 바꿔 시뮬레이션하는 데는 1주일이면 된다고 한다. 개편안에 따라 건보료가 오르는 대상도 직장가입자와 피부양자 45만여명으로 각각 1.8%와 1%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지역가입자 601만여명의 보험료가 줄어든다. 건보료 개편 작업 중단은 연말정산 파문에 놀란 정부가 일부 고소득자의 반발을 우려한 결과로 보인다. 3년 가까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추진해온 개편 작업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처사다. 정치적 판단에 의한 정책 뒤집기는 개혁정책에 대한 신뢰를 금가게 할 뿐이다. 건보 체계 개혁을 늦출수록 불합리한 구조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불신만 커진다. 개편 작업 백지화는 재고해야 한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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