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민호 '출구없는 막막함, 그 심정 이해할 수 있다'

유하 감독의 '강남 1970'에서 김종대 역할

이민호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유하 감독의 '거리 3부작'이 마침내 '강남 1970'으로 완성됐다. "대한민국 학교 다 X까라 그래"를 외치며 제도권 교육의 폭력성을 담아낸 '말죽거리 잔혹사(2004)'와 한 비루한 삼류건달의 이야기를 통해 '돈이 곧 형님'인 사회를 그려낸 '비열한 거리(2006)'를 거쳐 이번엔 자본과 권력과 폭력이 뒤엉킨 강남 이권다툼의 최전선을 다뤘다. 시리즈의 완결판인 만큼 전작들보다 폭력의 강도는 세고, 욕망의 밀도는 진하다. 권상우, 조인성 등 당대 청춘 스타들이 거쳐간 이 시리즈의 마지막 주자는 이민호(28)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 층에서 허덕이는 인물 '김종대'를 연기하면서 그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막막함과 처절함"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고 한다. 영화 개봉(21일)을 앞두고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이미지 변신에 대한 욕심이나 의도는 없었다. 드라마 '상속자들'을 찍을 때도 '왜 '꽃보다 남자'에서 했던 것처럼 또 교복을 입고 등장하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 때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그런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영화는 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만 좀 더 연기적으로 성숙해지기를 기다렸다가 20대 후반쯤에 찍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유하 감독의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이민호

이미지 변신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작품에서 이민호는 지금까지 주로 맡았던 '재벌2세'나 '부잣집 도련님'과는 전혀 다른 인물 '종대'를 연기한다. 심지어 고철과 폐휴지를 주워 끼니를 연명하는 넝마주이로 변신한 모습도 극 초반 등장한다. "내가 옷을 어떻게 입었는지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주위에서 다들 '불쌍해보인다'고 하더라. 그런 역할을 연기하면서 멋있어보이려고 하면 오히려 정신나간 게 아닐까."가족과 함께 발 뻗고 잘 수 있는 땅 하나 갖는 게 소원인 '종대'는 배신과 음모가 난무하는 조직 생활에 발을 디딘다. "대한민국 비좁잖아. 두고 봐. 앞으로 땅만한 노다지가 없을 테니까"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1970년대 강남 개발을 둘러싸고 조직폭력배와 정치인들의 결탁과 배신, 계략과 음모 속에서 '종대'의 야심도 커간다. 강남의 한 미개발지역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내가 달리는 데까지 다 내 땅"이라고 외치는 그의 눈빛에는 새로운 욕망이 이글거린다. 이민호는 "당시 종대 입장에서는 뭘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넝마를 줍거나 막노동을 하는 생활을 죽을 때까지 쳇바퀴처럼 해야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목표가 있으면 거기에만 매진해도 되는 세상이 됐지만, 1970년대의 상황은 다르지 않았나. '출구없는 인생에 대한 절박함'을 가지고 캐릭터를 이해하려 했다"고 말했다. 20대 초반 뜻하지 않는 사고를 당하면서 비슷한 심정을 느껴보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는 감독님께 '얼굴 상태가 너무 좋다', '귀티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며 웃었다.

영화 '강남 1970' 중에서

영화에서는 강도높은 난투극이 여러차례 등장하는데, 압권은 비오는 날 진흙탕에서 펼쳐지는 조폭들간의 패싸움 장면이다. 이민호가 가장 신경을 쓴 장면이기도 하다. "초반에 종대는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 식이었기 때문에 이 인물이 답답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이민호는 "촬영을 할 때는 계산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잔인하다는 느낌을 못받았다"고 말했다. 유하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러브 라인도 명확하지 않고, 노출 장면이 적은 것에 대해서는 "이 작품은 관객들을 위한 보여주기식 오락영화가 아니다. 이야기 전개상 큰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 상의 노출 장면도 뺐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트위터 격인 웨이보의 팔로어가 2500만여명으로 한류스타 중 최고를 자랑하는 그이지만 첫 주연영화에 대한 부담과 책임감을 털어버리지는 못했다. "정말 흥행만을 노렸으면 이런 느와르 영화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내가 발전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에 선택했지만, 흥행에 대한 책임감은 느낀다. 언론에서 한류스타라고 엄청 띄워줬는데, 정작 흥행이 안되면 어쩌나. 영화는 정말 촬영을 다하고도 편집하고, 홍보하고 하는 과정들이 피를 말린다. 밀당(밀고 당기기)당하는 기분이다"(웃음)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사진=최우창 기자 smic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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