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전 위원장 '法 본래 취지는 처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문화 바꾸는 것'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을 둘러싸고 과잉입법 논란이 나오는 가운데, 법 시행과 동시에 곧바로 처벌하도록 한 부칙도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당초 정부원안과 달리 법 시행 직후부터 처벌 규정이 적용됨에 따라 김영란법 위반을 두고서 격렬한 소송전이 벌어지는 등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은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이 만든 원안과 비교할 때 이해충돌 부분이 빠지고 적용대상이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까지 확대됐다. 이 외에도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처벌규정 시행시기도 수정됐다. 당초 김영란법 원안에는 부칙을 통해 시행일을 법 공포 후 1년으로 하되, 처벌 관련 조항들은 예외적으로 공포한 지 2년이 되는 때부터 시행하는 내용이 담겼다. 1년간의 유예기간을 둔 것이다. 그러나 이 내용은 국회 정무위 법안 심사 과정에서 공포 후 1년 뒤 시행으로 바뀌어, 법이 시행되자마자 처벌할 수 있도록 수정됐다.이 같은 법안 심의는 김영란법의 본래 취지를 어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김영란법 원안에 법 시행은 1년 뒤에 하되 처벌 규정은 2년 후부터 하는 것과 관련해 "당장 공무원들을 처벌하자는 게 아니라 서서히 바꿔나가는 것을 기다려 우리 문화를 바꿔나가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의 기본 취지는 공직자들을 엄격히 처벌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 사회에 자리잡아왔던 나쁜 관행들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김영란법 원안에 대해 1년간의 처벌 유예 조항을 넣었던 것은 법 취지와 내용들을 충분히 알릴 계도 기간을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정무위를 통과한 법안이 그대로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김영란법 시행 직후 사회적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격렬한 소송전이 난무할 가능성이 크다. 부정청탁인지 아닌지 등 애매한 부분들을 재판을 통해 가려야 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의 경우 당초 무 자르듯 법으로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판례 등의 축적을 통해 사회적 기준을 확립하려고 했는데, 국회 심의과정에서 부칙 내용이 바뀜에 따라 법 시행 즉시 처벌 여부를 가려야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더욱이 정무위를 통과한 김영란법은 부정청탁이 무엇인지에 대한 법적 정의 개념도 빠져 있다. 본지가 입수한 '법안심사 소위 쟁점별 검토사항'을 보면 '부정청탁'의 개념을 둘러싼 혼란이 감지된다. 권익위원회가 지난달 3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부정청탁의 정의를 유지한 채 일부 애매한 부분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부정청탁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려 했다. 하지만 이달 8일 제출한 같은 제목의 자료에서는 부정청탁의 개념 규정 자체를 삭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실제 김영란법 정부안에서는 2조 4에 부정청탁의 개념을 정의했지만 국회 정무위에서 의결한 법안에는 부정청탁의 개념을 뺐다. 금지된 부정청탁의 행위 유형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무엇이 부정청탁인지에 관한 부분은 빠져 있는 상황이다. 유무죄의 기준이 되는 부정청탁의 개념적 정의가 빠진 법이 시행될 경우 엄청난 사회적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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