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알바시네]36.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철도원’과 ‘러브레터’ 그리고 최백호

영화 '철도원'의 한장면

1. 최백호옛날 다방, 도라지 위스키 한잔, 슬픈 색스폰 소리, 밤늦은 항구, 연락선 선창가, 뱃고동 소리. 최백호가 호명하는풍경들은 그것들이 풍기는 때묻은 익숙함 때문에 왠지코믹한 느낌을 자아낸다. 우리가 싸구려라며 서둘러 팽개쳤던 개척시대의 들뜬 분위기들은 반질거리는 지금의 감성들과 소통할 코드를 잃어버린 채 저 희미한 옛날 속에 가득 파묻혀 있다. 그러나 그거 먼지만 조금 털어내면 아직 쓸 만하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끔, 아주 가끔 자본주의 태동기의 순박과 순정 속으로 기어들어 최루성 연애 한번 질펀하게 하고 싶은 심정, 안드는 것도 아니다.물론 마음 뿐이다. 고개 돌려 바라본, 지난 시간들의 아우라에 잠시 도취하는 순간일 뿐이다. 돌린 고개 다시 되돌리면 거기 주름접힌 세월의 이마가 찌푸리고 서있다. 내가 너무 궁상맞게 말하는가. 지난 시간들에 대한 생각이 지금을 더욱 쓸쓸하게 만드는 건, 현재가 과거를 질투하고 있기 때문일까. 우린 아무 것도 잃어버린 것이 없다.그것을 길어올리는 기억의 두레박들이 있는 한, 우린 죽을 때까지 살아온 세월을 함께 데려갈 것이다.

영화 '철도원' 포스터

2. 철도원영화 <철도원>을 보노라면 잃어버린 것, 혹은 잃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집착하는 태도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난떨기가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된다. <철도원>의 미장센을 이루는 황량한 간이역의 풍경은 사라져가는 것을 붙잡고 싶어하는 아쉬운 눈길이다. 영화에는 노장 후루하타야스오 감독의 시선이 가득 박혀있다. 이 영화는 바라보는 영화다. 이 영화의 대부분은 기억과 꿈이다.현실은 그저 눈내리는 역사驛舍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한 철도원의 부동자세일 뿐이다. 그 기차는 이제 막 폐선廢線을 앞둔철로의 마지막 운행차량이다. 철도원 또한 이제 정년을 앞둔 막막한 삶이다. 평생을 철도 밖에 모르고 살아온 삶이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그에게 궤도를 벗어나 다른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요한다. 그는 벼랑에 서있다. 사라지는 기차, 그리고 사라지는 호로마이역과 그 철도원 사토 오토마츠가 할 수 있는 일은 뒤돌아보는 일 뿐이었다.

영화 '철도원'의 한장면

3. 사라져버리는 무엇에 대한 고집최백호의 옛날 다방과 눈물짜는 연락선이 가끔 그립기는 해도 거기 가서 다시 살라고 하면 고개를 저으리라. 사토역장의 감미로운 비극에 매료된 일본인들에게 호로마이역에 가서 철도원 할래?라고 물으면 뭐라 대답할까. 그러니 사토의 뻣뻣하고 우직한 워크홀릭을 옛 군국주의와 사무라이에의 향수라고 해석해대는 건 과민일 지 모른다.사토 역을 맡은, 칠순을 바라보는 다카구라 겐이 사무라이 연기의 달인인 점이 그런 상상력을 부추겼을 것이고, 철도원이 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아이와 아내의 죽음을방관하는 것이라든가, 간이역을 사수하다가 끝내 죽어가는 모습에서 가미가제나 무사의 할복을 떠올리기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임무와 역할에 철두철미하고자 했던 정서는 바로 지나간 시대를 말해주는 키워드가 아닐까. 서부시대에 목숨을 걸고 정의를 지키던보안관들과 카우보이들의 직업의식을 보여주는 헐리웃영화 또한 낡은 청바지 위에 찬 권총과 함께 사라져가버린 아름다운 무엇에 대한 고집들이 아닌가.

영화 철도원 포스터

4. 무상홋카이도의 검은 흙과 끝없는 눈발은 사토 역장에게도 그리고 후루하타 감독에게도 그리고 영화에 눈에 묶였던 350만 일본 관객들에게도 무한한 상념을 던져주는 촉매였으리라. 한 인간을 더욱 돋음새김하면서 마침내 그 인간의 자취를 지우는 듯한 설경의 배치는 살아온 날들의 무상無常과 살아있음의 불안을 고조시킨다. 철도, 그리고 기차라는 죽은 사물에 한 생애로써 온기와 정신을 부여한 사토는, 그 자신이 하나의 기차이기도 하였다. 이 영화의 매력은 하얗게 정지된 화면의 여백 속으로 달려오는 단칸짜리 기차의 강렬한 동선과 그것을 기다리는 철도원의 기계같은 동작들이 주는 기묘한 대비효과에도 숨어있다. 단조롭고 쓸쓸하고 투명한 무엇이 눈앞에 꽉 차 있다.

영화 러브레터 포스터

5. 죽음기차라는 기계문명이 어떤 방식으로 일본사람들의 무의식과 만났으며 결합되었던가 하는 질문들의 대답이 이영화 속엔 녹아 있다. 신문명의 거대한 기계의 부속이 되어 근무하면서 한눈 팔지 않고 고집스럽게 일에 매진하는 정신들이 일본 자본주의의 밑변을 이룬 저력인지도모를 일이다. 결국 영화는 단순히 향수를 자극하려는 의도를 지나, 삶의 가치의 우선순위에 관한 다부진 질문을던진다. 그리고 편리와 쾌속을 구가하는 지금의 문명과삶이 과연 그 시절보다 더 아름답고 값어치 있는 삶인가에 대한 도발적인 물음을 이어서 던진다. 그가 아내와 딸이 죽었을 때 근무일지에 "이상없음'이라고 적었던 것처럼, 그의 죽음 또한 세상엔 "이상없음"으로 기록될 것이지만 철도와 함께 순사殉死한 그의 죽음은 그저 사라져가는 것들의 허탈한 종지부만은 아니다. 강렬한 무엇이 잔상처럼 남는다. 냉혈한처럼 보이는 사토의 굳은 표정에서 우린 뜻밖에도 너무나 고독하고 짙은 인간의 냄새를 흠씬 맡고온다.

영화 러브레터의 한장면

6. 이마이 슈운지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함께 본 일본 영화, 이마이 슈운지의 <러브레터>와 <4월 이야기> 또한 사라지는 것들에관한 감미로운 명상들이다. 편지라는 느린 정보수단은 사랑에도 시차時差를 종종 낳곤 했다. 러브레터의 인상적인 장면, 하얀 설원 위를 걸어가 애인을 향해 "오겡끼 데스까(잘 지내시나요)"를 외치는 와타나베 히로꼬의 목청과 메아리에는 순정만화처럼 가슴을 아리게 하는 무엇이 있다. 4월 이야기는 러브레터보다 더욱 수줍고 조심스럽기만 한 사랑의 이야기다. 일본엔 눈비가 많이 오는가? 철도원과 러브레터엔 눈밭이 화면을 채운다. 4월 이야기엔 소낙비가 중요한 모티프다. 그리고 4월 이야기와 철도원에는 벚꽃이 만개한 장면이 겹친다. 그러고 보니 눈이란 한순간 세상을 지워버리는 덧없음에다 그것 또한 덧없이녹아버리는 것이라는 점에서 영화들의 기분을 잘 맞춰준다.

영화 러브레터의 한장면

벚꽃 또한 그렇지 않은가? 한꺼번에 불붙듯 피었다가 후두둑 사정없이 져버리는 꽃. 금방 사라지는 것들. 벚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 식물은 전생에 아주 예민한 동물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저 연분홍의 아우성과 낙화의 몸부림이 어찌 내부에 마음의 미친 혈기가 없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랴? 그 화멸花滅의 비경 속으로이사를 오는 우즈키라는 소녀. 그녀가 시작하는 첫사랑의설레임은, 영화 속에서는 시작이지만, 관객들에겐 아주 해묵은 기억의 앨범을 들춰보는 추억의 환기이다. 우즈키가타고 다니는 자전거. 살이 부러진 우산. 대학 신입생들의자기 소개. 맨땅에서 낚시연습을 하는 학생들의 진지한모습. 이쯤에서 우린 4월 벚꽃처럼 만개한 옛 생각 속으로 빠져든다.

영화 러브레터의 한장면

7. 시간의 등 뒤에서이마이 슈운지 감독은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의 남성적인 굵은 선과는 대조적으로 아주 섬약하고 부드러운 영화를 만들어낸다. 4월 이야기를 보고 숭늉같은 맹맹함에다 작품의 길이마저 반 동강인 점에 분개한 관객들은 이마이의 이런 점에 이를 갈았겠지만, 길지 않은 필름 안에이렇듯 정밀하고 세련된 감정을 돋을새김할 수 있는 솜씨는 이마이 밖에 없을 거라고 상찬하는 다른 시선들도 있다. 우즈키의 4월은 처음 시작하는 것들의 불안과 우수가 가득하다. 처음 이사온 방에 그냥 누워버리는 소녀의모습. 사무라이 영화를 보러가서 찝쩍대는 사내에 놀라 도망치는 모습. 바지를 입으면 편할 텐데 치마를 입은 채자전거를 타고 언제나 급히 달려가는 모습. 그런 모습을 따라가며 관객들은 자신들의 내부에 잠복하고 있는 첫사랑의 세목細目을 흘낏흘낏 꺼내본다. 우린 여기 어디쯤에서 다시 최백호가 된다.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이런 구절을 흥얼거릴 법도 하다. 영화관의 그 사내 기억하는가. 우즈키가 놓고간 책을 돌려주려고 그녀의 자전거를 따라갔던......우즈키는 놀라서 혼신의 힘을 다해 자전거의 페달을밟는다. 사내는 간신히 좇아가 자전거 앞에 책을 넣어준다. 우리에게 우즈키로 분신해 부활한 첫사랑의 기억이란 대저 이런 꼬락서니가 아닐까? 우린 그녀를 찾아 세월을 거슬러 좇아가지만 그녀는 더 빠른 속도로 달아난다. 우리가 간신히 할 수 있는 것은, 그녀와 이어진 부박한 인연의 단서들을 되돌려주는 것, 그리고 치한처럼 헉헉 대며 멀리 사라지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일 아닐까?

영화 러브레터의 한장면

8. 가뭇없이일본 영화를 보면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고집과 슬픔을 먼저 읽게 된 것은 뜻밖이다. 아마도 우연히 그런 작품들이 내눈에 띈 것이겠지. 그러나 얼치기 자본주의 100년의 통증이 그 나라인들 없겠는가. 아마도 이쯤에서 뒤를 자꾸만 기웃거리게 되는 건, 어느 나라의 정서라기 보다는, 보편적인 인간의 기분같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영화가 꿈의 대리물이라면, 자주 꿈꾸는 내용들이 영화화되는 게 당연하다. 세편의 일본 영화를 요약해주는 한 마디의 말이 있다면 그것은 '시선視線'이다. 최백호의 낭만주의처럼 가뭇없이 사라지는 것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영화마다 가득 배어있다.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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