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빅시리즈 <2>아직은 낯선 혁신도시
-지방 이전 95개 기관 마무리 단계…56개 남아-주거 마련·나홀로 이주·맞벌이 부부 등 아직 고민 많아
한국전력공사 광주전남혁신도시 이전 모습
[아시아경제 특별취재팀]5t 트럭 815대. 이사비용 75억원.최대 공기업이라는 수식어답게 한국전력공사의 이삿짐은 컸다. 워낙 물량이 많다보니 이사하는 데도 오래 걸렸다. 11월7일부터 4주에 걸쳐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와 광주전남혁신도시 내 신사옥을 800여대의 트럭이 오갔다. 원룸 이삿짐을 꾸릴 때도 '웬 짐이 이리 많냐'며 한숨이 나오기 십상인데 1531명의 이삿짐을 옮기려니 말 그대로 '상상 그 이상'이었다고 한다.각 부서별로 이삿날을 받아든 직원들은 일제히 목요일 오후에 짐 싸는 작업에 들어갔다. 꾸려진 짐은 '한국전력공사 나주혁신도시 이전차량'이라는 안내문이 붙은 5t 트럭에 차곡차곡 쌓여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나주 신사옥으로 옮겨졌다. 업무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한 달간 진행된 '이사 대장정'은 지난달 30일 홍보실, 기획처, 재무처 등 350여명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이렇게 1986년 이래 28년간 삼성동을 지켜온 한전은 남쪽으로 약 300㎞ 떨어진 나주에서 새 시대를 맞았다. 그리고 12월1일 월요일, 혁신도시 청사에서 첫 업무를 시작했다. 낯선 곳에서 업무를 시작한 이들의 가슴 속엔 설렘과 걱정이 교차했다. 한전의 한 직원은 "가족과 함께 지방으로 내려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면서도 "새 출발에 맞춰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며 기대를 하게 된다"고 전했다.
한국도로공사 경북혁신도시 이전 모습
한국석유공사 울산혁신도시 이전 모습
같은 달 한국석유공사와 한국도로공사도 수십 년 써온 사무실을 떠나 각각 울산, 경북 김천에 둥지를 틀었다. 한전처럼 한 달까지는 아니지만 짧게는 일주일에서 열흘 동안 순차적으로 이삿짐을 내려보냈다. 바통을 이어받아 대한주택보증은 6일부터 부산의 새 집으로 갈 이삿짐을 꾸리느라 여의도 칼바람을 가르고 있다. 일반 사무집기야 트럭에 실어 보내면 된다지만 '귀하게 모셔야 하는' 전산시스템을 어떻게 옮길 지 고민이 많았다. 무진동 차량을 이용해 전산시스템을 부산으로 옮길까도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무진동이라도 데이터의 10%가 손실된다는 말을 듣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대주보 관계자는 "주택구입자금보증,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등 주택건설사업과 관련된 각종 보증 업무를 하고 있어 많은 양의 개인정보를 취급한다"면서 "혹여 이사 도중 데이터가 손실될까봐 전산시스템을 서울에 놔두고 부산에도 새로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새 본사의 시스템이 안정되면 기존 시스템을 폐기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올해 지방 이전을 계획한 75개 기관의 이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제 내년 상반기 지방 이전에 나설 기관들의 벤치마킹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옮겨가는 공공기관의 임직원들에게는 또 다른 숙제가 남겨져 있다. 특히 집 문제 해결이 가장 시급하다. 이전 시기가 닥쳐야만 현실을 자각하고 숙소를 구하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단기간에 구하려다 보니 터무니없는 집을 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정부는 지침을 갖고 체계적으로 대응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지방이전 공공기관 직원 숙소 및 임시사택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순환근무자가 거주하는 직원 숙소는 전체 본사 직원의 28.8% 내외로 신축하거나 매입·임대하도록 돼 있다. 나홀로 이주한 직원을 위한 임시사택(관사)은 이전 인원의 40% 내에서 4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그럼에도 본사 이전 시기와 별개로 '나홀로' 이주할지, 가족이 내려갈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은 경우가 적잖다. 이런 상황에서 이전시기를 맞게 되면 개인적으로 고달파지는 것은 물론 업무효율성까지도 영향을 받게 된다. 앞서 이전을 마친 기관 직원들의 사례를 보면 미혼이거나 자녀가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라면 주판알 굴릴 필요 없이 대부분 나홀로 이주를 택한다. 80~90%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중학교 1학년 쌍둥이를 둔 한 도로공사 직원은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의 자녀가 있으면 교육 문제로 인해 동반 이주가 힘들어 대부분 혼자 내려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맞벌이 부부라면 더욱 골치 아파진다. 부부 중 어느 한쪽이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떨어져 살아야 하기 때문. 내년 4월 진주 이전을 앞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은 "현재 6살, 2살 아이를 처갓집에 맡겨 기르고 있다"면서 "맞벌이여서 진주로 이전하게 되면 혼자 내려가야 할 형편"이라고 했다.내년 12월 원주로 옮겨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김모 과장도 마찬가지다. 아직 이전하려면 1년 남짓 남았지만 고민이 많다. 아내가 회사를 그만두느냐, 아니냐에 따라 다섯식구 모두 원주로 갈지가 결정난다. 유치원생 둘과 초등학교 2학년의 세 자녀를 둔 그는 "마음 같아선 가족과 함께 이주하고 싶지만 아내의 경력 단절과 외벌이라는 난제가 교차한다"고 했다. 김 과장은 "아파트를 특별공급분으로 분양받아놨으나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특히 부부가 지방 이전 기관에 일할 경우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공단에 각각 재직하는 커플이 대표적이다. 건보공단은 2011년 4월 4대 보험 징수 통합 과정에서 국민연금(712명), 근로복지공단(317명)과 인사 교류가 있었다. 이때 맺어진 부부는 "본사 근무를 그대로 한다면 원주와 전주로 갈라져 근무하게 된다"면서 "쉽지 않는 미래 설계 앞에서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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