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아침]결혼식을 위장한 기습 시위

[아시아경제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1979년 오늘 오후 5시 30분. 서울 명동 YWCA(기독교 여성청년회) 1층 강당에는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미리 돌려진 청첩장에는 신랑 홍성엽과 신부 윤정민으로 돼 있었고 분위기는 여느 결혼식장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주례는 ‘씨알의 소리’ 함석헌 옹이 서 있었고, 500여명이 식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이윽고 신랑 입장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방에서 유인물이 뿌려지고 누군가 마이크를 잡고 선언문을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수소리 함성소리로 결혼식장은 삽시간에 시위장으로 바뀌었습니다. 후에 사람들은 이를 ‘YWCA 위장 결혼식 사건’으로 불렀죠. 신랑은 연세대 사학과 복학생 이었으나 신부는 ‘민주주의 정부’의 앞 글자를 딴 뒤 순서를 바꿔 지은 가상의 여성이었습니다. 당시는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최규하 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하고 있었죠. 그러나 계엄령 하에서 실권은 사실상 신 군부 세력에게 있었을 때였습니다. 최 대통령 대행은 ‘유신헌법대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 한다’는 담화문을 발표합니다.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어떤 성격 이었느냐 하면 72년 12월 유신헌법에 의해 설치된 헌법기관입니다. 전국에서 직접투표로 선출된 대의원들로 구성됐으며 의장은 대통령이었습니다. 이 기관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어요. 먼저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결국 유신 헌법은 이 기관을 내세워 대통령 선거를 직접선거에서 간접선거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이 기관은 또 국회의원 1/3을 뽑았고, 헌법개정안을 최종 확정하는 등 그야 말로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기관으로 여겨졌습니다.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첫 대통령 선거인 72년 제 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단일 후보였던 박정희 후보가 2명의 기권을 제외하고 전원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이러다 보니 시민단체들은 직선제 대통령을 원하게 됐고 계엄하인 당시에 집회나 시위가 자유롭지 못하자 결혼식을 위장해 기습 시위를 벌인 것입니다.아무튼 결혼식장 아니 시위장은 곧바로 경찰에 의해 진압됐고 시위를 주동한 윤보선 전 대통령, 함석헌 옹 등과 문동환, 백기완, 박종태, 양순직 등 98명이 연행됐습니다. 이들 죄목은 불법 집회 및 시위가 아니라 다음날 ‘내란 음모죄’로 변경됐고 많은 사람들이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도록 해달라는 당연해 보이는 주장이 당시에는 내란을 음모하려는 것처럼 보였을 때였던 모양입니다.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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