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빅시리즈 #9. 유사 면세점 들어가보니
화장품·건강보조제 등 판매요우커 오면 꼭 찾는 필수코스상품에 대한 소개도 따로 진행한 화장품 판매점에선 1인당 평균 16만원 소비1988년 쇼핑편의 위해 업종 만들어외화벌이 효과 톡톡히 봤지만…최근 '덤핑관광의 온상'으로 지목내년부턴 부가세 혜택 사라져[아시아경제 주상돈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서울 시내에서 특별한 관광지가 없는데도 버스가 줄지어 서있고,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라면 그 주변엔 십중팔구 '외국인전용 관광기념품 판매점'이 있다.사람들은 이 낯선 단어 대신 '유사 면세점'이라고 부른다. 부가가치세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이름은 '외국인전용'이지만 출국 일자가 확정된 내국인도 이용 가능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 편의와 외화 획득을 목적으로 생겨났으니 벌써 25년이 훌쩍 넘었다. 현재 전국에 210개가 영업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이 이용하는 탓에 판매점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이곳들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지갑을 여는 외화 획득의 창구 중 하나지만 동시에 저가 덤핑관광의 온상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부터 이 업종 자체를 없애기로 했다. '쇼핑 수수료 등에 의존하는 부실 여행사가 자연스럽게 퇴출되는 등 합리적 시장질서가 확립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하지만 관련 업계에선 "태국 관광만 하더라도 단체관광객들이 뱀탕에 한약, 스쿠알렌 등 쇼핑센터를 10군데 이상 간다. 그것에 비하면 우리는 양반"이라는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지난해 국내 면세점 매출은 6조8654억원으로 세계 1위를 유지했다. 개별 면세점으로도 인천공항면세점이 세계 1위의 매출액을 점유하는 등 글로벌 면세업계에서 큰 시장이 된 지 오래다. 관세법에 의거해 지정된 일반 면세점(보세판매장)은 출국하는 내ㆍ외국인이 이용한다. 단체 요우커들이 주로 이용하는 '외국인전용 관광기념품 판매점'은 관광진흥법에 근거해 지정되는데 이용자격, 구매한도, 판매조건 등에서 일반 면세점과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몰려오는 요우커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한 외국인전용 관광기념품 판매점을 직접 찾았다. 이곳을 찾는 요우커는 하루에 줄잡아 1000여명이라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지난해 이 매장에서만 620억원어치가 팔렸다.
지난 19일 오후 버스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서울 창천동에 위치한 '외국인전용 관광기념품 판매점'에 들어가기 위해 모여있다.
◆요우커 문전성시 '호간보'= "중국 한 팀 들어갑니다." 지난달 27일 정오께 약 30분 만에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다원 호간보'로 100여명의 요우커들이 들어갔다. 인근 도로에는 이들이 타고 온 관광버스 6대가 늘어서 있었다. 50m 떨어진 곳에 정차한 한 관광버스에서 내린 20여명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줄지어 내부로 들어갔다. 6~7명의 직원들은 무전기를 통해 수시로 손님들의 입장을 내부에 알리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먼저 쇼핑을 마친 50여명의 관광객들 중 10여명은 이곳 제품을 산 쇼핑백을 하나씩 들고 나왔다.직원들은 내국인 입장 금지라며 취재기자를 제지했다. 발길이 막힌 취재진을 대신해 중국 국적의 통역이 단체 요우커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호간보'라는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외국인전용 관광기념품 판매점'이다. 상품에 대한 설명은 두 차례로 나눠 진행됐다. 우선 간(肝)과 헛개나무가 그려진 로비에서 간의 기능에 대한 설명이 진행됐다. 이후 요우커들은 승용차 두 대 크기의 작은 방으로 각각 안내됐다. 여기서 본격적인 호간보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한 판매직원은 헛개나무로 만든 호간보가 간에 좋은 건강식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홍콩과 신진(新津)에 체인점이 있는데 한 박스 기준으로 신진에는 3968위안(약 71만원), 홍콩에는 3800위안(약 68만원)에 팔고 있다"며 "한국에서는 2896위안(약 52만원)으로 싸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한 번에 두 알씩 하루에 두 번 먹는다"며 요우커들에게 한 알씩 나눠줬다. 함께 호간보에 대한 설명을 들은 20여명의 요우커 중 3명이 4통이 들어있는 한 박스씩을 구매했다. 요우커를 인솔하는 가이드는 호간보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을 할 뿐이었다.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다원 호간보를 찾는 외국인은 하루 평균 1000여명. 중국을 중심으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의 관광객들이 주 고객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약 620억원. 지난 9월에는 한국관광협회중앙회로부터 '외화획득 우수관광업체'로 선정돼 5000만달러 관광진흥탑을 받기도 했다. 다원 호간보가 문전성시를 이루면서 인근에는 '○간보'처럼 비슷한 이름의 판매점이 운영되고 있다. 상표등록이 된 '호간보'는 쓸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 관계자는 "관련 사업은 화교들이 30년 전부터 시작한 사업으로 지금도 화교가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라며 "이 일대는 남자 화교 두 명이 잡고 있다"고 귀띔했다.같은 날 홍대에서 인천공항으로 빠져나가는 월드컵북로에도 버스 10여대가 정차돼 있었다. 이 도로 양쪽에만 화장품과 건강식품을 파는 '외국인전용 관광기념품 판매점' 4개가 모여있기 때문이다.방문 판매를 주로 하는 화장품 제조업체 아마란스가 운영하는 판매점의 지효영 이사는 "중국인 관광객이 대부분이고 평균 16만원 정도 소비를 한다"고 말했다. 요우커들은 보통 1인당 7만~10만원 정도를 구입하는 말레이시아 관광객보다 씀씀이가 큰 편이라고 했다.화장품 판매점의 경우에는 10분 정도 화장품에 대한 소개와 테스트를 한다. 이는 제품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 매출 증대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지 이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영업을 하는데 보통 오전 10시~오후 2시가 피크타임"이라며 "집중력이 좋은 오전에 오는 손님들이 많이 사고 오후에는 집중력이 흐려져서 그런지 매출이 오전만 못 하다"고 말했다.가이드들은 보통 이 같은 유사 면세점에는 투어 둘째 날 혹은 셋째 날 방문한다. 가이드와의 친밀도나 가이드의 화술에도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첫날부터 유사 면세점을 가지 않는다고 했다. 가이드의 입장에서는 가장 큰 판매수수료를 올릴 수 있는 '길일(吉日)'은 투어 둘째 날 오전인 셈이다.2012년 9월에 이곳에 판매점을 오픈한 아마란스는 홍보관의 개념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지 이사는 "지금까지는 사실 적자"라며 "우리가 판매하는 질 좋은 화장품은 원가가 비싼데 판매수수료는 원래 이 바닥에서 형성된 정도로 주니까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관광객을 인솔하는 가이드와 여행사에 주는 판매수수료는 대략 20~30% 수준이다. 그는 "2012년에 면세점을 열고 이 바닥에 있어보니까 주변 면세점과 기념품 가게 사장이 대부분 화교 혹은 조선족(중국 동포)이더라"고 말했다.이어 그는 "중국에는 화장품 수출하려면 위생 허가 등이 까다로운데 여기서 중국인들이 사가고 또 입소문이 나면 직구를 하지 않겠나. 그걸 노리고 있다"며 "올해 12월에는 다른 곳에 3층짜리 건물로 이사를 해서 전체를 아마란스 면세점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서울 창천동에 위치한 외국인전용 관광기념품 판매점에서 건강식품을 구매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쇼핑백을 들고 나오고 있다.
◆전국에 210개 성업…'덤핑관광 온상' 인식에 내년 사라져= 한국관광협회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전국에 '외국인전용 관광기념품 판매점'은 210개에 달한다. 중앙회가 집계를 시작한 2009년 당시 110개이던 판매점은 2010년 179개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후 2012년 215개로 최대치를 기록했다.지역별로는 단연 서울에 집중돼 있다. 서울에만 100개가 운영 중이다. 다음으로는 제주도 40개, 경기도 22개, 인천 12개 순이다. 서울에서는 마포구에 쏠려있다. 대부분 공항을 오가기 편리한 큰 도로에 인접해 있다. 마포구에 43개, 서대문구 17개, 강서구 9개가 몰려있다.이 업종은 1988년 당시 서울올림픽 등의 굵직한 국제행사를 앞두고 방한 외국인들에게 쇼핑 편의를 제공하는 동시에 이를 통한 외화획득을 목적으로 생겨났다. 이전에도 기념품업에 대한 법률은 있었지만 현재 외국인전용 관광기념품 판매업의 모습을 갖춘 것은 이때다.판매점들은 부가가치세가 포함되지 않은 금액으로 물건을 판매할 수 있다. 판매점들이 '듀티프리'라는 문구를 간판에 넣는 것도, 유사 면세점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판매점들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외국인 고용 추천을 받을 수 있다. 출국 일정이 확정된 내국인도 이용할 수 있지만 대부분 외국인이 이용하는 판매점이기 때문에 외국어를 잘하는 직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편의를 위해 법무부에서 해외영업원 비자인 'E7'비자를 발급해줬다.하지만 이 같은 혜택은 내년 1월1일 모두 사라지게 된다. 문체부는 '외국인전용 관광기념품 판매업의 자유업종 전환'을 골자로 한 관광진흥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 7월 공포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외국인전용 관광기념품 판매업 자체가 없어지게 된다.문체부 관광상업과 관계자는 "관련 법률을 만들 당시에 꼽은 쇼핑 편의라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는 이미 달성이 됐고 외화획득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언론이 지적한 것처럼 '저가덤핑관광의 온상'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아졌다"고 개정 추진 이유를 설명했다.그는 "기존과 같은 부가세 혜택을 누리려면 물건을 산 외국인이 공항 등지에 설치된 환급 창구에 가서 환급을 받는 '사후 면세점'으로 지정을 받으면 된다"며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서는 부가세를 환급받으러 사후 환급 창구를 찾아가는 번거로움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외국인 고용 부분은 시행령을 입법 예고하면서 거센 반발을 받는 부분인데 이와 관련해서 기존 판매점들이 사후 면세점으로 지정을 받을 경우에는 지금처럼 외국인들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증 발급지침을 법무부에서 지난 4월 개정했다"고 설명했다.관련 법률 개정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H 판매점 관계자는 자율과 방침은 '눈치보기 행정'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금도 처음 법안을 만든 취지처럼 관광객이 더 늘어나고 판매점을 통한 외화 획득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 이를 폐지한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며 "저가 덤핑 관광의 주범으로 꼽히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야지 업종 자체를 없애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처사"라고 말했다.<기획취재팀>취재=주상돈ㆍ김민영ㆍ김보경 기자 don@사진=최우창 기자 smicer@통역=최정화ㆍ옌츠리무주상돈 기자 don@asiae.co.kr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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