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 전세난민의 추억

김민진 건설부동산부 차장

[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역전세난(逆專貰難)'은 국어사전에도 수록된 단어다. 이 단어가 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 담긴 건 2003년이다. 역전세난의 등장은 훨씬 이전이겠지만 국어사전 수록 당시는 역전세난이 극심했던 때였던 것 같다.전셋집 물량은 늘었지만 수요가 줄어 전세 계약이 잘 안돼 겪는 어려움이 바로 역전세난이다. 국지적이고 단기적이라는 게 특징이다.  특정 지역에 일시적으로 주택 공급이 폭증하면 준공 이후 입주할 집이 남아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지니 전셋값은 떨어지게 되고 기존의 전셋집이 빠지지 않는 연쇄작용이 일어난다. 분양은 잘됐지만 막상 입주시기에 경기침체를 겪거나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그 영향을 받는 경우에도 역전세난이 발생한다. 이런 사례는 대게 신도시나 재건축 단지에서 빈번하다. 투자 목적으로 주택을 분양받았는데 입주시기 경기침체를 만나 팔리지도 않고 세입자 구하기도 어려워지는 것이다. 역전세난 심화기엔 세입자의 이사 비용을 대주거나 대형 냉장고 등을 경품으로 내거는 등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에서 대표적인 역전세난이 다시 등장한 건 2008~2009년이다. 금융위기로 집값이 하락하던 시기였다. 반면 잠실, 서초 등 강남 재건축 아파트 입주가 몰리면서 역전세난이 심화됐다. '집주인 수난시대'라는 말까지 등장할 만큼 콧대 높은 집주인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당시 한 부동산 전문가는 "매매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매매 수요가 전세로 전환될 수 있어 내년 이후에는 역전세난이 다소 완화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의 분석대로 이후 수년 동안 매매가격은 상승세로 돌아서지 않았고 매매 수요가 전세로 전환되면서 전세난이 시작됐다. 역전세난을 겪던 강남 신축 아파트 단지 전셋값은 2년 후 두배 가까이 올랐고 6년이 지난 현재는 당시보다 세배 정도 높다. 전세난이 심해지면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1년 새 2700만원 가까이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도 3억원을 돌파했다. 그렇지만 서민, 중산층이 실제 체감하는 전셋값 상승 폭은 이보다 크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등을 보면 3~4인 가족이 많이 찾는 도심 2억~3억원 짜리 전셋값은 정부나 부동산 관련 기관이 발표하는 상승폭보다 더 많이 올랐다. 마포구의 한 아파트 전세 가격은 4년 새 1억원, 30% 가량 올랐다. 2011년 전세 가격이 2억원대 초반이었지만 지금은 3억원대 초반에 계약되고 있다. 도심의 어느 단지를 검색해보더라도 사정이 비슷하다. 소득이 전세값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한다면 선택은 4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담보대출로 집을 사거나 신용대출 등으로 전셋값을 올려줘야 한다. 이도저도 아니면 반전세로 전환해 월세를 물거나 직장이 먼 외곽으로 주거를 옮겨야 한다(연령대에 따라 아이들을 전학시켜야 할 수도 있다). 2년 후엔 비슷한 걱정을 또 해야한다. 오르고 내리는 것이야 시장수급 논리라지만 어쨌건 경착륙은 여러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비용 부담을 늘리거나 생활 터전을 옮겨야한다는 것인데 결국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진다. 무능한 정책, 서민은 더 고달프다.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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