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대형 참사나 의문사 등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유족들에게 '외로움'은 고통이다. 특히 떠들썩한 관심 뒤의 쓸쓸함은 고통을 배가시킨다.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여론의 시선을 모으면 뭔가 해결될 것이란 기대를 갖게 된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관심이 멀어지면 다시 제자리다. 그들은 다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고(故) 김훈 중위 사건도 그런 경우다. 김 중위 부친이 아들 죽음의 진실을 찾고자 보낸 시간이 16년이다. 대표적인 '군의문사'라는 상징성 때문에 언론의 집중조명도 받았다. 하지만 아들 죽음의 진실을 규명해 명예회복을 이루겠다는 꿈은 여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의문사 유족들은 언론이 관심을 기울일 때 희망과 불안함을 동시에 느낀다. 이번에도 해결되지 않으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위해 김 중위 부친을 만난 일이 있다. 그는 2시간에 걸쳐 열변을 토했다. 그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바로 사람들의 '기억'이었다. '의문의 죽음', 그 진실을 찾으려는 가족들의 절박한 마음을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참혹한 모습으로 숨을 거둔 28사단 윤 일병 사건도 마찬가지다. 끔찍한 폭행과 사건 은폐 문제는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정부나 정치권이 당장이라도 해법을 마련할 것처럼 움직였다. 이제 병영문화는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까. 따돌림과 구타로 군에서 숨을 거두는 일은 없어질까. 단언하기 어렵다. 오래된 병폐를 바로잡는 것은 단숨에 이뤄지지 않는다. 시민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지 않으면 언제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대형 참사 유족에게도 사람들의 '기억'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유족들은 "왜 우리 가족만 이런 불행한 일을 겪어야 하는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뜻을 전하면 응어리진 마음도 조금씩 풀리게 마련이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시민들의 다짐은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공감(共感)의 표현이다. 유족들은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 믿으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정말로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실천하고 있을까.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 멀게는 성수대교 참사가 벌어졌을 때 당시를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나. 하지만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져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할지 모른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문제는 유족들의 사연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를 자신과는 무관한 일로 치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라도 내가 겪을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대응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말 그들만의 사연일까. 판교 추락사고가 있기 전에 환풍구 위에 서 있다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도 도심의 수많은 환풍구 위를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다. 환풍구가 안전한 공간으로 바뀔 때까지 사람들은 판교 추락 사고를 기억에서 지워서는 안 된다. 참담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변화의 씨앗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나.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그들의 사연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소중한 경고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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