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수백만원을 주고 샀을 명품이리라고 생각했던 옷이 '싸구려'인 1만8000원짜리인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던 경험이 있다. 얼마 전 우연히 참석한 한 행사에서 그랬다. 그 행사의 여주인공 옷이 특별히 시선을 사로잡았다. 약간 광택 있는 검은 색에, 발목까지 오는 민소매 원피스와 아이보리색 실크 노방의 볼레로(원피스 위에 입는 짧은 옷)차림이었다. 원피스는 힙부터 자연스럽게 늘어지는 좁은 A라인으로, 몸의 곡선이 알맞게 드러났다. 볼레로는 허리선 길이의 박스형이었다. 긴 소매는 소매산에서 소매 단까지 길게 터져있고, 그 중간 부분을 한 땀 찝어서 움직일 때마다 팔의 맨살이 살짝 보였다. 가슴 아래로는 다아아몬드형 슬릿들이 타원형의 작은 인조 진주들로 연결되어 있었다. 노방의 고전적인 느낌과 현대적인 분위기가 묘하게 어우러졌다. 목에 건 여러 줄의 진주 목걸이와 빨간 구두가 무채색옷에 악센트를 주고 있었다. 고급스럽고 우아했다. 행사가 끝나자 참석한 여성들이 "얼마짜리 명품이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입을 쩍 벌렸다. 안에 입은 원피스는 재활용 가게에서 8000원에 샀고, 볼레로는 유명 디자이너 샵의 창고 세일에서, 유행이 지난 1만원짜리 바지를 사다가 볼레로로 고쳐 만든 것이라고 했다. 패턴도 없이 가지고 있던 옷에 대충 맞춰 만드는 과정에서 소매통이 충분치 않아 양쪽으로 갈라지게 연결했다는 것이다. 다 만들고 드라이를 하고나니 실크 노방의 우아함이 되살아났다는 설명이었다. 그녀의 '옷과의 씨름'은 계속되었다. 행사 전날 곱게 다림질한 원피스가 막상 입었을 때 구김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낮은 온도로 다림질을 한다고 했는데도 뜨거웠던지 옷이 다리미에 달라붙어 구멍이 뽕뽕 나버렸다. 식장에 가야할 시간인데 낭패였다. 발을 동동 구르다가 해결책을 찾았다. 네크라인을 장식하던 꽃들을 떼어, 흉하게 난 구멍에 적당히 배치하여 급히 꿰매 입었다. 그 꽃들이 구멍을 가려준 것은 물론 심플한 치마에 악센트가 되어 자연스럽고 예뻤다. 몇백만원짜리 옷처럼 보였다. 어떤 명품에서도 볼 수 없는, 그녀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옷이 되었다. 옷은 자기를 표현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적극적인 수단이다. 과거 일부 특수층의 전유물이었던 패션이 자본주의와 민주화에 힘입어 대중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획일화된 유행의 틀에 가두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대중화된 패션을 누림과 동시에 차별화된 자기정체성(identity)을 찾아야하는 필요성에 당면하게 되었다. 자기 정체성 확립에는 여러 수단과 방법이 동원된다. 획기적인 스타일로 개성을 나타내기도 하고, 값비싼 명품들로 자기를 과시하기도 한다. 여유가 된다면 명품의 활용이 그중 쉬운 방법일수도 있다. 명품이란 유명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하고 명인들이 만들어내며, 값이 비싸 아무나 소유할 수 없으므로 가장 확실한 차별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명품 족, 된장녀(?)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꼭 비싸야만 좋은 옷이 아니다. 옷이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그 옷을 입은 사람이다. 소박하고 최선을 다하는 진지한 삶이 옷과 조화를 이룰 때, 바로 '바람직한 정체성'이 완성됨을 행사장의 여주인공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 하였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산업부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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