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인기배우 카세 료, 주인공 '모리' 연기...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영화 '자유의 언덕'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반복과 변주'. 홍상수의 영화를 소개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그의 영화는 비슷한 패턴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한 번도 제자리걸음이었던 적은 없다. 꿈과 현실, 우연과 시간을 이야기하는 그의 영화들은 매번 새로운 지점으로 관객들을 인도했다. 그의 16번째 장편영화 '자유의 언덕'은 아예 시간의 흐름을 흐트러놓으면서 보는 이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잠깐의 혼란은 어느 새 더 큰 여운으로 다가온다.아픈 몸 때문에 잠시 시골에서 요양을 하다 서울로 돌아온 '권'(서영화)은 이전에 일하던 어학원에 잠시 들린다. 거기서 동료로 지냈던 일본인 강사 '모리'(카세 료)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받는다. 두툼한 편지를 한 장씩 읽어 내려가던 '권'은 계단을 내려오다 순간 현기증에 주저앉고 만다. 바닥에 흩어져버린 편지들에는 날짜가 쓰여져 있지 않다. '권'은 '모리'의 마음을 담은 이 편지들이 어떤 순서인지 알 도리가 없다. 영화는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편지의 시간을 따라간다. '권'을 만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모리'가 서울 북촌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낸 2주간의 일기가 편지의 내용이다. 이곳에서 '모리'는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카페 주인 영선(문소리)의 잃어버린 개를 찾아주기도 하고, 게스트 하우스 주인 구옥(윤여정)과 아침밥을 두고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게스트 하우스의 다른 손님(정은채)이 아버지의 손에 끌려 떠나는 모습을 보고는 상원(김의성)과 함께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다'고 뒷담화를 하기도 한다. '모리'의 일상은 무작위로 전개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홍상수식 문법에 익숙해진 관객들이라면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자유의 언덕' 중에서
홍상수의 오랜 팬임을 자처한 일본 배우 카세 료는 홍 감독의 촬영 스타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짧게 깎은 반삭의 머리와 단색의 헐렁한 티셔츠와 면바지 차림은 꼭 '모리'의 모습같다. 그날 촬영할 대본을 아침에 현장에서 직접 써서 주는 것에 대해 카세 료는 "홍 감독이 쓴 대본은 웃음이 나올 만큼 이상하기도 하고, 무서울 만큼 날카롭고, 놀랄 만큼 간소하고 아름다웠다. 게다가 각 배우들의 입에 잘 붙도록 쓰여 있었다. 매일 아침, 대본을 받는 것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음주 촬영 장면에서 실제로 적당량의 술을 먹고 장면을 찍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의식하지도 못했던 행동들이 나와 재밌었다"고 말했다. 홍상수 영화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는 문소리, 윤여정, 김의성 등의 배우들은 '모리'와 소통하기 위해 영어 대사를 사용하는데, 그 모습이 어색한 듯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신선하다. '하하하'에 이어 문소리의 사랑스러움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자유의 언덕'은 제7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경쟁부문에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진출했다. 4일 개봉.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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