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녀 할머니.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김보경 기자, 김민영 기자, 주상돈 기자]#31. 이귀녀 '중국으로 끌려가 60년간 고국으로 못 돌아와'충북 청주가 고향인 이귀녀 할머니는 1943년에 중국 위안소로 끌려가 2년간 고초를 겪었다. 해방이 되고 난 이후 중국인 남편을 만나 중국에서 함께 살았던 할머니는 60여년 동안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2012년 대한민국 국적 회복한 후에야 고국으로 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워낙 세월이 흘러 친척들을 찾긴 힘들었고, 지금은 경기도 용인의 한 요양병원에 머물고 있다. 우리말을 많이 잊어버린 할머니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가 여의치 않다. 면회 오는 사람도 거의 없어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어릴 때 복순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할머니는 지금도 고향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훔친다.
이○○ 할머니.
#32. 이○○ '사람들에게 피해가 알려지는 것도 두려워'1925년 태어난 이○○ 할머니는 조카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관절염과 허리 통증으로 거동이 힘들지만 지팡이를 짚고 동네를 산책하는 재미로 산다. 이웃들과도 정답게 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지난해 여성가족부 장관이 할머니 집에 찾아왔을 때도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고. 할머니의 피해 사실을 모르는 동네 사람들도 많은데, 여러 사람들이 집에 들어와서 창피했다고 전했다. 할머니는 "위안부가 무슨 죄인인 것처럼 느껴지더라"고 말했다. 최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평화의 집'에 입소하려고 했지만 건강이 악화돼 포기했다. 할머니는 활동가들과 헤어져야 할 때면 대문 밖으로 나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든다.
이○○ 할머니.
#33. 이○○ '최근 건강 악화…수요집회 참석 못해 미안해'충청남도 당진에 살고 있는 이○○ 할머니는 뒤늦게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이 됐다. 당초 본인은 등록을 원하지 않았는데, 주변 사람이 할머니 사정을 듣고 신고해줬다고 한다. 동생이 일찍 세상을 떠 그의 아들을 데려다 키웠다. 할머니는 몇 년 전 고관절 수술을 한 뒤 거동이 불편해져 보행기를 타고 이동한다. 최근에는 노환으로 시력과 청력이 크게 악화됐다. 그래도 매일 오전마다 간병인이 와서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을 해주기 때문에 한결 낫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주변 이웃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할머니 집에 모여 말동무가 돼 주기도 한다. 활동가들이 찾아오면 TV방송을 통해 수요집회를 보고 있다면서 함께 참석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시리즈 중 계속됩니다.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주상돈 기자 d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획취재팀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기획취재팀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기획취재팀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기획취재팀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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