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중에서 단오, 한식, 유두는 비교적 흐려졌어도, 설과 추석만은 여전히 똑똑하게 남아 해마다 경배를 받는다. 설은 일출을 기념하는 날이다. 한 해의 맨 처음에 떠오르는 해를 옷깃을 여미며 받아들이는 날이다. 추석은 한 해의 수확을 거둘 무렵의 저녁, 떠오르는 달에 기쁨과 감사를 전하며 서로의 수고를 치하하는 날이다. 설은 해의 날이며, 추석은 달의 날이다. 설은 아침의 날이며 추석은 저녁의 날이다. 해는 우리 겨레에게 하늘의 상징이며 남성의 이미지였다. 달은 땅이며 여성이다. 설날에 우린 하늘과 남자를 우러르고 추석에는 대지와 여성을 우러른다. 여성은 생산과 풍요이며 모성이기도 하다. 설과 추석이면, 머나먼 귀성을 몸 아끼지 않고 하는 것은, 하늘에 속한 존재, 혹은 땅에 속한 존재인 스스로에 대한 근원적인 감수성이 작동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차례라는 이름으로 조상에게 감사하는 까닭은 그들이 해와 달의 오랜 스토리를 우리에게까지 전해내려준 전수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늘과 땅의 자손이며 일월(日月)의 민족이다. 이 천손(天孫)의 자부심은, 다른 신앙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 사유가 진실에 닿아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가장 새로운 해를 여는 날에 했던 맹세를, 우린 가장 밝은 달을 만나는 밤에 다시 확인하고 격려하는 한가위는, 공동체의 행복을 하나의 '데이'로 상징화해놓은 것이기도 하다. 명절이란 '이름이 있는 날'이다. 추석(秋夕)이란 한자를 풀면, 가을저녁이란 의미일 뿐이지만, 그 함의는 모든 포용과 화해와 축복을 담은 것이다. 가을저녁을 이름으로 담기만 하여도, 모두가 보름달처럼 둥글어지는 그 마음이 이 날에 생겨나는 까닭이다. 추석이 되면 유난히 어머니가 떠오르고 고향이 정겹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곳이 생산과 풍요의 원산지이며 또한 영원히 우리에게 창의적 영감을 주는 '접신'의 토포스이기 때문이다. 크고 넓고 아득한 마음으로, 돋아오는 달을 한번 보시라. 당신은 생각보다 오래된 사람이며 놀라운 영원의 빛이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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