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파라치 대응 매뉴얼까지… 소비자 피해 우려

12일 한 통신사 대리점에 불법 녹취와 촬영을 금지하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아시아경제 윤나영 기자] "죄송하지만 사진 촬영은 안됩니다." "녹음을 계속 하시면 상담이 어렵습니다." "메모지는 저희가 회수해가는 게 원칙입니다."며칠 전 직장인 서혜미(29·여)씨는 휴대폰을 새로 장만하기 위해 들른 판매점에서 황당한 일을 겪어야 했다. 서씨는 일단 몇 가지 원하는 단말기에 대해 상담 받은 내용을 녹음해뒀다가 집에 가서 다시 들어보고 판단을 내리기 위해 휴대폰 녹음기를 켰다. 물론 나중에 판매점 직원이 딴소리를 못하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판매점 직원이 상담 내용 녹취가 불가능하다며 녹음기를 꺼주길 요청하는 것이었다. 화가 난 서씨는 다른 매장을 찾았지만 그곳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녹음이 안 되는 것을 물론 상담 내용을 메모하는 것도 금지였다. 물론 사진촬영도 못하게 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불법 보조금을 신고하는 폰파라치 제도를 악용해 일선 휴대폰 유통점끼리 채증을 해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경우가 늘면서 소비자들까지 불편을 겪고 있다. 한번 잘못 걸리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막대한 액수의 벌금을 물거나 리베이트 차감을 당하는 경우도 있어 판매점들은 불법 보조금 증거 수집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는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공유하고 있다. 매뉴얼 내용에 따르면 상담 시 휴대폰 화면 상단 마이크 아이콘 등 녹음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는지 확인한 후 '상담 중 녹취 불가'를 안내하고 거부할 경우 상담을 중단하도록 돼 있다. 또 해당 매뉴얼은 판매 조건은 메모지·계산기 등 필기로만 설명한 후 메모지를 파기하거나 회수하라는 요령도 제시한다. 여기에는 심지어 주의해야 할 고객 유형까지 상세하게 나열돼 있다. 서울역 근처에 위치한 한 판매점 직원은 "우리도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가 없다"며 "괜히 악성 고객이나 업계 관계자한테 잘못 걸렸다가는 패가망신하는 수가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런 판매점들의 불안과 우려는 소비자 불편과 피해로 돌아온다. 휴대폰을 개통할 때 약정한 판매조건이 정당한지 나중에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분쟁 발생 시 개통취소 등 권리를 주장하기도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당국의 보조금 단속을 피하기 위해 페이백 방식(법정 가이드라인을 위반하지 않는 액수로 개통한 뒤 차후 보조금을 입금해 주는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면서 관련 서류를 남기지 않아 나중에 피해를 보는 소비자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종로 지하상가의 한 판매점을 찾은 조모(24)씨는 "전산상으로 보조금 입력이 불가능해 30만원을 통장으로 넣어준다고 했는데 아무 서류도 없이 판매점 직원 말만 믿고 어떻게 가입을 하느냐"고 불만을 털어놨다. 조씨는 또 "'불법 녹취 적발 시 법적 책임 묻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곳도 있었다"며 "마치 내가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불쾌했다"고 말했다. 윤나영 기자 dailybes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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