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과 우울감으로 일상생활에 복귀 어려워'…어떤 재난보다 비극적 사건
▲팽목항에 묶여 있는 노란리본들
[진도(전남)=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 유제훈 기자] 세월호 사고로 인한 고통은 희생자 가족들뿐만 아니라 잠수사와 어민 등 구조에 직접 참여했던 이들은 물론 현장에 머문 경찰과 취재진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죄책감과 우울감으로 일상생활에의 복귀를 어려워하는 등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그만큼 이번 세월호 참사가 과거의 어떤 재난보다도 충격이 큰 비극적 사건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3일 현재 진도체육관에서 앞 저수지에서 24시간 근무를 서고 있는 경찰 A씨는 "공무 중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했지만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진도체육관에서 근무하는 경찰들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유가족들에 의한 우발적 사고 방지다. A씨는 "저수지에서 극단적 행동을 하려는 유가족을 보호하는 임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눈에 금방 눈물이 고였다. 다른 경찰관은 "그동안 많은 재난과 사고를 보고, 또 가까이서 지켜봤지만 이번처럼 가슴 아픈 사고는 처음이다. 그래서 마음이 우울해지고 답답해져 정신을 가눌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현재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에는 각각 90명의 경찰이 배치돼 있으며 각각 30명씩 3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파견된 이들은 한번에 일주일씩 근무한다. 사고 수습이 장기화되면서 중복투입되는 인원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종득 전남경찰청 홍보계장도 "마음이 아프다거나, 경찰로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근무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은 이번 사고를 취재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현장의 기자들은 일상생활에의 복귀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고 후 취재를 위해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에 열흘간 머문 기자 B씨는 "평소 꿈을 잘 안 꾸는데 진도에 다녀온 후 꿈속에서 목발을 짚고 병원에 다니거나 망망대해가 나오는 꿈을 몇차례나 꿨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보며 '딴 세상 사람들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시신이 대거 수습되던 당시 일주일 넘게 현장에 머문 기자 C씨 역시 "유리로 된 집안에 있는데 물이 막 새어들어오면서 무너지는 꿈을 꾼다"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그는 "동행 취재했던 유가족 아주머니가 늘 구호물품으로 준 파란 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서울와서도 파란색 옷 입은 사람만 보면 우울해진다"고 말했다. 팽목항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제칠일안식교회 소속 이막내씨(61)는 "실종자 가족들도 그렇지만 여기 있는 경찰, 자원봉사자, 소방관, 기자 등 여러 분들도 표정이 좋지 않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팽목항의 심리상담센터 관계자도 "상담업무를 하고 있는 나 자신조차도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이곳에 모인 이들 모두가 2차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권정혜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해 "현장에서 외상에 많이 노출된 분들(경찰·소방관 등)은 외상후 스트 장애 고위험군이다"라며 "초창기부터 이분들은 많은 끔찍한 장면과 현장에 노출됐음에도 우리 사회가 너무나 '일' 중심으로 접근한 나머지 심리상담·치료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렇게 가다간 또 다른 소수의 사람이 후유증을 안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면서 "우리는 이들의 정신 건강을 너무도 소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덧붙였다. 진도에 배치된 경찰들의 숙소인 경찰수련원 내에 심리상담센터가 마련돼 있지만 실제로 이곳을 찾는 경찰은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경찰청에 따르면 지금까지 경찰병력을 대상으로 한 상담실적은 총 41건, 61명에 그치고 있다. 투입 병력에 대한 전수 상담이나 테스트도 진행하고 있지 못하는 상태다. 중복투입을 감수해야 할 만큼 업무량이 많고 바쁘다 보니 현장에 있는 경찰들도 쉽사리 상담을 받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계장은 "추후 사고 수습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심리상담이나 치료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박나영 기자 bohena@asiae.co.kr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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