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며느리룩, 천송이 립스틱'에 숨은 한국사회 단면들…
[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청담 며느리룩', '천송이 립스틱', '사도세자 책상'…. 최근 유난히 잘 팔린 상품들이다. 이들 상품의 키워드를 살펴보면 요즘 한국사회의 단면이 보인다. ◆강남속의 강남 '청담'"이젠 '강남'만으로는 안돼요. '청담'을 넣어야지..."'청담 며느리룩', '청담의 메카', '청담 주부들이 오는 곳' 등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광고문구다. 서울 강남에서 마케팅대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씨(33)는 "광고에서 '강남'이라는 단어는 이제 소구력이 떨어진다"며 "성형외과 광고의 경우 실제 주소가 청담동이 아니더라도 그 근방이면 '청담에 위치해 있다'는 문구를 꼭 넣는다"고 말했다. '청담'이라는 문구 자체가 프리미엄이 된 것이다. 이씨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청담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전혀 상품의 타겟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는 "잘 사는 집단의 상징이 돼버린 '청담'에 소속되고 싶은 사람들, 특히 중산층도 아닌 '중하층'이 공략대상"이라며 "한국인 특유의 열등감, 비교의식을 건드리는 전략이 성공한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 교수는 "한국인들은 소속된 집단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심리가 강하다"며 "이때 가입이 어렵고 비싼 멤버십일수록 잘 팔린다"고 말했다. ◆''○○○ 따라잡기'지난 겨울 '김희애 패팅'은 매출부진으로 한국 매장 철수설이 돌던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를 다시 안착시켰고 지난 2월 종영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화제가 된 '천송이 립스틱'은 주문 폭등으로 재고가 없어 못 팔정도다. 이처럼 특정 집단이나 인물을 내세운, 소위 '따라잡기 광고'가 기승하고 때로 그 효과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매출실적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 교수는 "우리 사회가 '관계주의' 성격이 강한 것에 그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자기소개서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서양인들의 자기소개서가 '나는 무엇을 좋아한다'로 시작한다면 우리는 '3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나...' 등 자아가 관계에서 출발하는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관계 내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가 중요한 사람들은 '보여주는' 측면이 강한 물건으로 어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에서도 관계주의 성격이 강한 이탈리아 사람들이 '따라하기' 식의 소비를 많이 해 유럽 다른 나라들로부터 '실속없다'는 놀림을 당하곤 한다"며 "이런 사람들에게 '너 빼고 다 샀어'하는 광고가 가장 효과를 발휘한다"고 말했다. 자신만 소외되지 않을까 하는 '고립불안'을 자극하는 것이다. ◆'엄마'라면 살 수 밖에 '고립불안' 현상이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분야가 '육아ㆍ교육'이다. 곽금주 교수는 "다른 엄마들이 하는데 자기만 안하면 엄마들은 불안해한다"며 한때 엄마들에게 불티나게 팔린 어느 명품브랜드의 '유모차'를 사례로 들었다. 지난해 출시됐던 한 업체의 스터디부스는 '사도세자 뒤주'를 연상시키는 외관 자체로로 충격적이었지만 강남엄마들에게 주문이 밀려 있다는 소식은 더 큰 충격을 줬다. 가로, 세로 1m 안팎에, 높이가 2m 남짓한 스터디부스 안에는 책상과 의자가 부착돼 있고 여닫이문이 달려 아동학대라는 비판까지 낳았다. 김경일 교수는 "강남 엄마들의 불안은 상상을 초월한다. 불안감이 큰 사람들은 질이 아닌 양으로 승부하려 하기 때문에 일단 아이를 책상 앞에 앉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머리로는 아이들 각자의 잠재력을 계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불안이 클수록 동일한 항목으로 경쟁시키려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핀셋'마케팅…군인휴가성형ㆍ자녀 유학보낸 부부 아파트 핀셋으로 '콕' 찍어내듯 고객의 연령ㆍ나이ㆍ성별ㆍ취미 등을 세분화해 마케팅하는 전략도 눈에 띈다. 강남에는 남성성형만 전문으로 하는 5층 병원이 생겼다. 마케터 이씨는 "일반 성형외과들도 남성들을 위한 홈페이지를 따로 제작하는 등 그들만을 위한 상품과 전용공간을 마련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장기간의 휴가를 내기 어려운 직장인들을 위해 '런치 쌍커플', '14일 가슴성형' 등 '빠른 회복'을 강조한 상품들도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군인들의 휴가기간을 공략한 "5일 만에 코성형 완성, 훈련해도 무관" 등의 광고까지 등장했다. 박나영 기자 bohena@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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