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임구 현대건설 장보고 과학기지 현장소장 전화인터뷰
-10월 말~3월 초 남극의 여름에만 작업 가능…290명 전문가 마감·내장 막바지 작업 한창-공사 초기 자재·중장비 얼음 위 횡단 운송-밤새 강풍·눈…직원들 컨테이너 갇히기도
(왼쪽)건설공사가 시작되기 전 현장 인근에 해빙이 떠다니고 있는 모습. 오른쪽 사진에는 2단계 건설공사(2013년 12월~2014년3월) 중인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의 현장 모습이 담겼다. 우리나라의 두 번째 과학기지인 장보고기지는 다음달 11일 완공을 목표로 한다. 이 기지는 앞으로 빙하, 운석, 오존층, 극한지 공학 등 대륙 기반의 연구에 집중하게 된다.
곽임구 현대건설 장보고 과학기지 현장소장
[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극한의 땅. 따뜻하다고 해봐야 영하 5도를 오르내리며 강풍이 불어 닥치는 험준한 날씨. 도시에서 접하는 어떤 인프라를 경험할 수도 없고 전화 통화마저 간헐적으로 연결되는 곳, 남극. 여기서 대한민국 대표 건설기업인 현대건설이 첨단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현장을 지휘하는 곽임구 소장은 강창희 국회의장 등의 일행이 계획보다 일찍 '준공식'을 하고 떠난 자리에서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느라 여념이 없다. 건축전문가인 곽 소장의 묵직한 목소리는 인터넷 전화가 어렵사리 연결된 것임을 실감하게 했다.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을 드러낸 곽 소장은 이렇게 운을 뗐다."살면서 지금까지 자원을 해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여긴(장보고 과학기지 건설) 자원했어요. 막연히 당겼다고 할까요. 그런데 후회가 많습니다.(하하)"수화기 너머 들려온 곽임구 현대건설 남극 장보고기지 현장소장의 목소리에선 묘한 감정이 묻어나왔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역사상 한 획을 긋는 현장을 함께 한다는 짜릿함과 극한의 상황에 잔뜩 긴장한 기력이 역력했다. 아직 장보고기지 건설 공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계획대로 3월11일 공사를 완전히 마치려면 25일은 더 있어야 한다. 곽임구 소장이 "한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장보고기지를 준공했다는) 자부심은 한 달 뒤로 미루겠다"고 말한 이유다. 곽 소장과의 통화는 지난 14일 오전 11시40분, 현지시간 오후 3시40분부터 40분 동안 진행됐다. 동남극 빅토리아랜드 테라노바만 연안 장보고기지 현장에서는 현재 290여명의 전문가들이 막바지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5일, 건설단은 97일 일정으로 남극 땅에 발을 다시 디뎠다. 본관동ㆍ발전동ㆍ정비동 등 주요 건물의 마감ㆍ내장 공사 등을 마치기 위해서다. 장보고기지 건설은 10월 말~3월 초 남극의 여름에만 이뤄졌다. 곽 소장은 "한국에서 도면, 자재 발주, 검수 등의 공사 준비를 하다 남극의 여름에만 들어가 공사를 진행했다"면서 "프로젝트 자체의 리스크(위험부담)나 안전사고 위험도 많고 공사를 할 수 있는 기간이 워낙 짧다보니 전부 다 힘들다"고 토로했다.
장보고 과학기지 기공식 기념사진
곽 소장 말대로 공사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기지 건설에 필요한 자재ㆍ장비, 식자재, 각종 생활용품 등을 남극 땅에 내려놓고 건설 현장까지 옮기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남극은 문명세계가 아니다." 곽 소장은 2012년 89일 일정으로 기초공사를 하던 때를 떠올리며 이 같이 말했다.곽 소장은 "자재, 중장비 등 대규모 화물 운송을 하려면 공항이나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항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인프라가 전혀 없다"며 "쇄빙선을 앞세워 겨우 해안선으로부터 1.2㎞까지 접근시킨 후 얼음 위에 중장비를 내려놓고 자재 등을 육상으로 운송했다"고 말했다. 2m가량의 얼음 위를 횡단하며 '얼음이 언제 녹아내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자재를 날랐던 것이다. 공사에 투입된 건설인력 중 누구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다 보니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자신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공포를 없애는 것 또한 곽 소장의 몫이었다. 그는 "미국, 러시아 자료를 입수해서 수도 없이 공부를 했고, 최종적으로는 국제연구소에서 러시아 전문가들을 초빙해와 얼음 상태, 운송 속도, 크랙 상태, 안전조치 등 전천후로 도움을 받았다"고 전했다.혹독한 추위와 강풍 등 극한의 자연환경과 맞서 싸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때문에 주요 구조물 일부는 한국에서 만들어와 현지에서 조립했다. 강풍이 눈을 몰고 와 자재나 건물 주변에 쌓이다보니 바람이 그치고 나면 제설작업을 하길 수도 없이 반복했다. 89일 동안 남극에 머물렀던 지난 시즌(2012~2013)에는 날씨 탓에 20일을 '공쳤다'. 밤새 눈이 많이 쌓였을 때 가설 캠프(컨테이너) 문을 밖으로 열지 못해 직원들이 갇히기도 했다. 이럴 땐 다른 컨테이너 안에 있던 직원들이 제설작업을 해 빼내줬다. 곽 소장은 "환경적인 여건상 크고 작은 16개의 건물 중 대다수가 1층을 벽체 없이 기둥만 남겨놓은 '필로티'(고상식) 구조를 채택할 수밖에 없다. 통로를 통해 바람이 바로 빠져나가면 건물 주변에 눈이 쌓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밖에서 활동할 수 없을 때 직원들은 캠프에서 밀린 잠을 자거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여전히 장보고기지 건설은 현재 진행형이다. 완공 목표일은 3월11일인데, 지난 12일 한 달 앞서 준공식을 열었다. 남극은 3월부터 해가 짧아지고 기지 앞 바다가 얼기 시작해 혹여나 철수하기 어려워질 우려가 있어서다. 곽 소장은 "지난해 10월31일 선발대가 와서 제설작업, 캠프 재가동한 뒤 본진이 본격적으로 공사에 착수한 것은 100일 정도밖에 안 된다"면서 "100~130일의 공사기간 중 25일이 남아있는 셈이니까 짧은 기간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준공식은 했어도 공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24시간 비상대기 상태로 한시라도 긴장을 풀 수 없다"고 덧붙였다.외부와 철저히 고립돼 있으니 외로움과 싸울 법도 했다. 그러나 곽 소장은 아랍에미리트(UAE), 베트남 등 가족과 떨어져 생활한지 13년이 넘어 익숙하다고 한다. "사실 공사 외적인 일을 생각할 만한 여유도 없이 너무 바쁘다"며 손사래를 쳤다. 마지막으로 또 다시 남극 기지 건설현장에 자원할 것인지 곽 소장에게 물었다. 그는 "직원들은 다들 두 번 오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한 뒤,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저 웃고 말았다. 박혜정 기자 parky@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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