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정상화하는 작업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사회경제 분야에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잘못된 관행을 법과 국민상식이 정한 바대로 '정상화'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파부침선(破釜沈船)'이라는 말이 있다. '솥을 깨뜨려 다시 밥을 짓지 아니하며 배를 가라앉혀 강을 건너 돌아가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지 않고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면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한 국정의지가 결연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지난해 말 민영화 논란으로 불거진 철도노조 파업사태는 정부의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한 국정의지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이러한 가운데 신용카드산업에도 비정상의 정상화가 한창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27일 검찰은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결제승인 대행(VAN) 서비스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비리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VAN사는 신용거래 과정에서 조회승인과 매입 업무를 대행하는 부가통신사업자다. 검찰은 공기업인 코레일유통과 유명 편의점, 프랜차이즈업체, 쇼핑몰, 테마파크 등 대형가맹점 임직원들이 VAN사업자 선정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사실을 밝혀냈다. VAN사 임직원들이 가맹점에 지급하는 리베이트를 가로채고 VAN대리점 선정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금품 수수 규모를 보면 적게는 수천만원부터 많게는 수십억원에 이른다. 이 사건은 오랜 관행으로 자리 잡아 온 VAN사업의 이권을 둘러싼 불법 리베이트와 금품로비 등 구조적 비리를 적발한 최초의 사례다. 신용카드업계는 2012년 12월, 불합리한 가맹점수수료 체계를 개선해 수수료를 대폭 인하했다. 또 정부는 여신전문금융업법을 개정해 대형가맹점의 부당한 행위를 금지했다. 그러나 가맹점수수료 원가를 구성하는 VAN수수료 중 상당액이 대형 가맹점에 리베이트로 제공되는 관행에 대해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있어 왔다. 개편된 체계의 핵심은 중소가맹점에는 낮아진 수수료율을 적용하고 연매출 1000억원이 넘는 대형 가맹점에 대해서는 인상된 수수료율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연매출이 2억원이 안 돼 영세가맹점으로 분류되면 기존 1.8%에서 1.5%로 낮아진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을 수 있다. 수수료 체계 개편으로 전체 가맹점의 96%인 214만개 가맹점이 인하된 수수료율을 적용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요율 적용 체계도 바뀌어 기존에 업종별로 가맹점 수수료율이 책정됐다면 향후에는 가맹점별로 수수료율을 카드사와 협상을 통해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시장구조를 개편하기 위해 카드업계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삼일PWC 등의 전문 기관에 VAN시장 구조를 합리화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KDI는 지난해 10월 25일 VAN시장 구조개선 최종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VAN사업자가 대형가맹점에 제공하는 리베이트 규모는 전체 VAN수수료 수입의 30%에 해당하는 2400억원으로 추산했다. 또 리베이트 혜택은 대형가맹점이 주로 누리는 반면, 영세가맹점에게는 수수료 부담 증가로 전가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리베이트가 근절될 경우 2400억원의 절감비용을 가맹점 집적회로(IC) 카드단말기 교체작업에 쓰도록 유도한다는 입장이다. 대형가맹점에 대한 VAN사의 리베이트 관행을 불법화하기 위한 법 개정 작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본다. 아무쪼록 이번 검찰의 수사결과를 계기로 VAN사업자 리베이트 근절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실천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김근수 여신금융협회 회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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