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의 사생활-14장 흐르는 강물처럼(238)

큰 병원에서 머리 수술을 받은 소연의 사촌언니는 서울 외곽에 있는 작은 요양원으로 가 있었다. 하림은 차를 타고 소연이가 핸드폰으로 알려주는 대로 물어물어 찾아갔다. 유월의 늦은 오후였다. 요양원은 낡은 흰색 삼층 건물이었다. 건물 뒤에는 마악 보랏빛 꽃을 늘어뜨리기 시작한 등나무가 있는 작은 뜰이 있었고, 환자복을 입은 노인들이 벤치 군데군데 앉아있는 게 보였다. 하림은 그곳에서 소연이가 나오길 기다렸다. “하림 오빠!” 오래지 않아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먼 시간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반갑다기 보다 왠지 짠한 느낌이 들었다.“응. 너 머리 했구나.” 그녀를 보자마자 하림이 웃으며 말했다. 맨 처음 눈에 띈 것이 머리 모양이었다. 노랑대신 까만 머리가 파마를 해서 탐스럽게 부풀려 있었다. 거기에 흰 블라우스 위에 엷은 녹색 자킷에 걸치고 있었는데 전혀 다른 사람 같이 보였다. 소녀 같았던 모습이 그새 어른처럼 변해 있었던 것이다.“왜요? 이상해요?” 소연이 어색하게 따라 웃으며 말했다.“아니. 예뻐. 몰라보겠는걸....” 하림이 여전히 미소를 달고서 놀리듯이 말했다.“치잇.”“언니는 좀 어떠셔?”“그냥 그래요.”“뭘 좀 먹을래?”“배고파요?”“아니, 그냥.....” 그러자 소연이 호호거리며 혼자 웃었다.“왜....?”“아니, 그냥. 그 소리 들으니까 처음 오빠 만났을 때 기억이 나요. 그런 셈이지, 그런 셈이지, 하던 말, 말이예요. 그러고보니 하림 오빤 무엇이든 똑 부러지게 대답하는 법이 없는 사람 같네요.”“그런가.....” 하림도 따라 웃었다. 그러고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그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자기가 생각해도 요즘 들어 매사가 더욱 전부 그런 식이었다. 무슨 일이든 자신있게 이렇다 저렇다 하지 못하는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할 때가 많았다.“뭘 먹을까요? 여긴 별루 먹을 게 없는데....” 소연이 말했다.“아무거나 먹자. 라면 어때?”“라면....?” 소연이 농담하느냐, 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왜? 살구골 화실에 있을 때 먹던 라면 생각이 나서 그런다. 후후거리며 혼자 먹던 라면 말이야.” 그런 그녀를 향해 하림이 장난스런 표정으로 덧붙였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김영현 기자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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