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앞에서 번연히 보고서도 모르는 것이 사람마음이었다. 남경희의 말이 맞다면 지난 겨울, 예초에 윤여사가 자기를 이곳으로 보낼 때부터 무슨 꿍꿍이속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 죽인 범인을 찾아달라는 것이나 자기 고모를 좀 보살펴달라는 말 등은 그저 안개에 불과했는지 몰랐다. 그녀로서는 이 곳 골짜기에 <차차차 파라다이스>라는 대규모 위락시설을 유치할 목적이 있었고, 그 목적에 걸림이 되는 이층집 부녀를 쫒아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엔 또 하나의 장애물이 있었으니 바로 이장 운학이었을 것이다. 얼간이 같은 이장이 죽자사자 하고 이층집 여자 남경희를 쫒아다니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런 상황 속으로 윤여사가 하림을 보낸 것이었다.왜 그랬을까? 하림은 뒷짐을 진 채 방안을 천천히 한바퀴 돌았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그녀가 흘러가듯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영감은 자기 딸, 무슨 신학대 교수를 하다가 그만 두었다는 사십대 초반의 여잔데, 자기 아버지처럼 빼빼 마르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여자죠, 그 딸이랑 새로 지은 이층집에 살고 있어요. 잔디가 깔린 아주 멋진 이층집이죠. 그 이층집에서 그들은 마을 사람들이랑 거의 접촉을 하지 않고 살고 있어요.’ 그러면서 슬쩍,‘근데 그 마을 이장이란 자가 그 여자를 좋아한대나 봐요. 미친 인간이죠. 절름발이에다 술주정꾼이라던데..... 어쩌면 개를 쏘아죽인 자가 바로 그 작자일지도 몰라요.’ 하고 은근슬쩍 지나가는 투로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잘못 입력된 선입견은 그 후 종종 잘못된 판단을 낳게 마련이다. 특히 애매모호 하거나 복잡한 상황 속에 빠진 인간은 그가 처음에 지녔던 그런 선입견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아랍과 이슬람 교도가 테러리스트라고 한번 잘못 입력된 사고를 지닌 사람은 평생 아랍과 이슬람 교도를 두려워하고 미워하기 마련인 것처럼..... 어쩌면 윤여사도 하림에게 그런 선입견을 심어주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이 복잡한 상황 속에 던져진 하림이 이장과 남경희의 사이에서 잘못된 일들을 벌이고 그들 사이에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그렇게 하여 이층집 영감과 딸, 이장까지 한꺼번에 나가떨어진다면 그녀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었다. 꼭 다 맞아 떨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그녀로서는 손해 하나 볼 것 없는 꽃놀이패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뜻대로 돌아가지는 않는 것이 세상의 법이었다.그날 소연이 자고 간 날 저녁, 우연이라면 우연히 하림은 총소리를 들었고 그 총소리를 따라 나섰다가 수도 고치러 온 사내 최기룡이 총에 맞은 개를 끌고 어둠 속으로 걸어가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차츰 윤여사의 처음 계획이 일그러졌을 것이었다. 바람막이로 내세웠던 하림이 오히려 바람이 되어 돌아왔던 꼴이었다. 그래서 지난 번 동철이랑 왔을 때도 하림에게 의외로 냉담하게 대했는지도 모른다.그래도 어쨌거나 일은 그녀의 생각대로 돌아갔다. 최대의 장애물이었던 이층집 영감이 일을 크게 벌여주는 통에 영감 자신은 꼼짝없이 감옥에 가게 되었고, 딸은 딸대로 이곳을 떠나겠다고 했다. 그녀 없는 이장은 끈 떨어진 연이나 다름없을 것이었다. 병원에 누워있는 최기룡은 죽을 정도는 아니니까, 적당히 대우하여 써먹으면 될 것이었다. 모든 게 그녀의 뜻대로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김영현 기자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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