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괴담이 연예가를 덮고, 정치적 사건이 매주 새로이 나타난다. 승승가도에서 더욱 도약하는 이들과 탈락하는 이들이 뉴스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그동안 누릴 만큼 누렸고 쌓아둘 만큼 쌓아두었을 터, 세상에 실없는 일이 정치인 걱정, 연예인 걱정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경제침체기의 생활전선이다. (영세)자영업자들, 대기업과 같은 거대조직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 말이다. 요즘 노량진 수산시장은 한가하다. 서해에서만 잡히리라 믿고 꽃게는 산다. 그러나 일본방사능 블랙리스트에 오른 어종, 의심스러운 어종을 찾지는 않는다. 이렇게 된 지 꽤 됐다. 앞으로 얼마나 갈까? 유감스럽게도 광우병 파동보다는 오래 가리라. 아베보다 오바마를 더 합리적이라고 여겨서만은 아니다. 후쿠시마에 불침(不沈)의 방사능 항모(航母)가 있다. 어선들이 조업을 재개한다느니, 원전이 어쨌다느니 하면서, 해류와 방사능과 물고기의 관계를 계속 상기시킬 것이다. 지난밤에도 이례적인 후쿠시마 청소년의 암 발생률과 지하수 오염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그렇다고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남의 탓만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 전체도 아니고 후쿠시마 인근 5개현에서만 원전사고 이후 지금까지 8000t이 넘는 수산물을 우리나라에 수출하였다고 한다. 일본에서 수입한 어마어마한 해산물이 은연 중에 소비되었다. 노량진수산시장에 유입되지 않았다고 공언할 수 있는가. 그 의심이 지금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1990년대부터 유럽에 창궐하던 광우병에서 독일 역시 자유롭지 못하여 한때 돼지고기가 쇠고기보다 비쌌던 적도 있었다. 한 해 도살되는 소가 100만마리가 훨씬 넘는데도 독일은 이를 전수조사하다가, 2007년에 이르러 광우병증상 발생건수가 5건 이하로 진정되고서야 비로소 그만두었다. 그동안에도 마트와의 경쟁에서 정육점은 살아남았다. 우리와 대조되는 대목이다. 마트가 규모 면에서 신뢰를 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육류의 가격이 어림잡아 절반밖에 되지 않는데도 독일인들은 정육점의 고기를 훨씬 좋아했다. 정육점은 품질과 신용으로 버티었다. 정육점만이 아니다. 독일에서 치보라는 커피판매체인점은 가격과 품질 면에서 막강한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럼에도 동네 구석구석에는 나름의 취향과 특색을 가진 독자적인 커피판매전문점들이 무리 없이 운영되고 있다. 독일인들이 이 전문점을 찾는 이유는, 내가 저 집에 가서 커피를 사지 않으면 또 하나의 맛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노량진수산시장은 소중한 도시문화이자 서울의 자산이다. 길은 있을 것이다. 장사하면서 얼마나 단골을 확보하고 얼마만큼의 신뢰를 받는가가 관건이다. 1차적으로 할 일은 원산지표시이다. 대충 넘어가면 당장은 편하고 이익일지 몰라도, 길게 볼 때 손님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은 말뿐이고 막상 둘러보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정부가 오염된 지역과 오염되지 않은 지역을 나눠서 그것에 대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행태를 보아서는 정부를 믿기보다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대표를 정해 유통경로에 대한 감시도 해야 한다. 위반자에 대해 시장의 냉혹함을 보여줄 수 있도록 무기도 벼려놔야 한다. 국가는 바쁘다. 서글프지만 각자도생해야 한다.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고,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조직화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신조합주의(Neocorporatism)라 거창하게 하는 말은 바로 이러한 현실에서 출발한다.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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