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주상돈 기자, 김보경 기자, 김민영 기자] "결혼? 56년이던가, 57년이던가…."윤 할아버지는 결혼을 언제 했는지 선뜻 기억해 내지 못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야 "아, 고등학교 졸업한 해였으니까 1958년이네"라며 가까스로 결혼한 해를 기억해 냅니다. 하지만 자식들 나이는 기가 막히게 대답합니다. "큰아들은 쉰다섯이고 딸 하나는 쉰하나, 막내딸은 마흔여덟이야." 국민학교에 입학한 해도, 남대문시장에서 억척스럽게 시계 장사를 시작한 때도 가물가물해졌지만 매년 한 살씩 더해지는 자식들 나이는 척척 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큰아들에 대해 묻자 "애들 얘기하려면 골치 아파"라며 입을 굳게 닫아버립니다. 다시 슬쩍 큰아들 얘기를 꺼내자 "묻지 말라니까"라며 버럭 화를 냅니다. '더 이상 자식들 얘기는 꺼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서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던 윤 할아버지를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윤 할아버지는 충남 청양에서 1935년에 태어났습니다. 그 시절 다 그랬듯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습니다. 3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났지만 형님과 누님이 세상을 일찍 떠나 큰아들로 자랐습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서울로 유학을 올 수 있었던 것도 맏아들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6ㆍ25 전쟁이 끝난 지 2년 뒤인 1955년 상경했습니다. 이때부터 3년간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 6촌 아저씨 집에서 살며 중앙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스무 살이 넘은 나이에 입학한 늦깎이 고등학생이었던 것이죠.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결혼했답니다. 이때 현재 살고 있는 서울 금호동에 터를 잡았는데 결혼을 하고는 바로 3주 후에 군대에 갔다는군요. 전역 후에는 남대문 시장에서 중고시계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시계 도매상에게 받은 중고시계를 조금씩 팔다가 자연스럽게 알게 된 밀매 경로를 통해 일제 시계를 밀수해서 팔았답니다. 할아버지는 다 지난 이야기라며 털어놓았는데, 이후엔 밀수한 금괴도 팔면서 제법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이때는 무서운 것도 없었어. 잡히면 쇠고랑 차겠지만 자식이 셋이나 있었으니까."이 돈을 밑천으로 시작한 것이 소금장사. 호주에서 수입한 소금을 난지도에 산처럼 쌓아놓고 전국 각지로 배달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좀 풀리나 싶던 일이 어느 순간 꼬이기 시작했답니다. 당시 일반 상거래에서 많이 사용되던 '문방구 어음'을 대량으로 받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1988년 윤 할아버지는 2억여원의 부도를 맞았습니다. 3년이나 돈을 받으러 쫓아다녔지만 한 푼도 못 건졌다네요. 자식들이 눈에 밟혀 넋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 털고 일어나 동대문 책방골목에서 10여년을 장사했습니다. 자식들이 출가한 것도 이때입니다.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0년, 7년간 투병생활을 하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무렵부터 적적함과 허전함을 달래려 시작한 할아버지의 '공원 출근길'은 벌써 14년째입니다.[관련기사]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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