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질의, 칼날 추궁, 언론 주목받기'는 이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아시아경제 김인원 기자] 국회에서 근무한 지 올해 5년째를 맞은 비서관 A씨는 지난달 중순 국회 앞 원룸을 계약했다. 국정감사 기간을 앞두고 좀 더 수월하게 일을 하기 위해 아내와 딸아이가 살고 있는 경기도 수원 본가에서 나와 새로 방을 구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국감을 앞두고 새벽 5시면 일어나 자료와 질의서를 다듬고 배포한다. 국감장에 참석하면 자정을 넘기기도 일쑤다. 혹시라도 의원의 질의 순번이 늦거나 다른 의원과 내용이 겹치기라도 하면 국감장에서 다시 질의서를 작성하고 추가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점심을 건너뛰는 건 예삿일이다. 그 와중에도 기자들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놓치지 않아야 한다. 기사 확인도 필수다. 언론 노출빈도가 곧 국감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피감기관과의 피 말리는 '밀고 당기기'= 하루에도 수백 개씩 쏟아지는 국감자료지만 보좌진이 국감자료 하나를 만드는 데에 적지 않은 노력이 들어간다. 주요 자료를 최대한 제출하지 않으려는 피감기관과의 힘겨루기가 무엇보다 힘들다. 의원실의 자료제출 요구에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는 쏙 빼놓는 경우는 다반사다. 민주당 중진의원의 한 보좌관은 "일부러 틀린 자료를 주고 그것을 토대로 질의하는 의원을 무식하다고 공격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피감기관 쪽에서 "계속 강압적으로 자료를 요구하면 전화내용을 녹취할 것"이라고 의원실을 협박한 사례도 있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의 보좌관은 "곽병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의원님 전직을 거론했다"며 "8년간 국회생활을 했지만 이번처럼 피감기관이 의원실을 상대로 위협하는 것은 처음이었다"고 털어놨다. 곽 이사장은 정 의원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 이력을 언급하며 의원실에서 준비 중인 보도자료를 배포하지 말 것을 요구해 물의를 일으켰다.◆기자의 눈을 잡아라= 자신이 준비한 국감자료를 언론에서 대서특필해주면 그간의 고생은 눈 녹듯 사라지는 느낌이다. 언론 보도는 곧 보좌진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이 간택되기는 쉽지 않다. 새누리당 의원의 한 보좌관은 "의원실에 이메일이 등록돼 있는 국회 출입 기자가 500명 정도 되는데 국감자료를 보내면 보통 10% 정도만 이메일을 확인한다"면서 "이 가운데서도 실제 기사를 쓰는 기자는 절반 정도"라고 밝혔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기자들의 눈에 들기 위해 각 의원실은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한다. '새벽 5시의 자료'로 불리는 추미애 민주당 의원실의 국감 보도자료는 매일 새벽 5시에 이메일로 배포된다. 추 의원실 측은 "보통 기자들이 5시쯤 업무를 시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맞췄다"며 "최대한 어필하기 위해 이른 시간에 보내고 또 규칙적으로 같은 시간에 보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어떤 의원실은 기자 한 명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 자료가 첨부된 이메일을 꼭 확인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어떻게든 기사를 내보내려는 의원실의 노력은 눈물겹다.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좌진의 성과로 인정하는 의원들이 많기 때문이다.◆국감성과로 보좌진 물갈이= 보좌진 인사는 전적으로 의원이 결정한다. 한 보좌관은 "의원들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국감이 끝나면 성과에 따라 '물갈이 분위기'가 조성된다"면서 "국감 끝나고 바로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바쁜 연말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보좌진이 바뀌는 방들이 꽤 있다"고 전했다. 국감기간 성과를 내지 못했거나 의원의 마음에 차지 않는 질의서를 작성했다면 단연 교체대상에 오른다. 그러다 보니 보좌진들은 더욱더 국감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반면 소위 한 건을 올리거나 국감장에서 의원이 주목을 받았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높은 성과를 인정받아 승진의 기회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포상휴가'나 '성과급'을 받기도 한다. 6년째 국회생활을 하고 있는 한 비서관은 "국감기간 동안 피감기관에 대해 세부적으로 파헤칠 수 있고 다양한 내용을 다뤄볼 수 있어 이후 입법 활동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국감이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한 보좌관은 "의원들의 소속 상임위가 너무 자주 바뀌고 그때마다 새로운 피감기관을 조사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추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며 "격 있는 국감은 보좌진들의 전문성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김인원 기자 holeinon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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