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정기자
[아시아경제 손은정 기자] "빨리 우승하고 싶어요."
세계 정상을 눈앞에 두고 여러 차례 발걸음을 돌려야 했지만 여전히 씩씩하기만 하다. 투어 5년 차,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행복 바이러스'로 통하는 최운정(23ㆍ볼빅)이다. "부족한 것 투성이"이라고는 하지만 기량도, 멘탈도 이미 다 갖춘 우승 후보자다. 더없이 높고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스카이72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최운정을 만났다.
▲ "아버지 퇴직금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마니아였던 부모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실내연습장에서 골프채를 휘둘러 봤다. 어린 아이들이 시작하는 방식대로 '똑딱이' 대신 풀스윙을 먼저 배웠다. "엄마가 제 스윙을 보는 순간 재능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최운정의 골프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전력을 기울였던 바이올린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다른 선수들처럼 골프 칠 수 있는 여건이 좋지는 못했다. 최운정은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경기장에 데려다 줄 시간이 없었다"며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시합을 다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됐고, 이듬해 프로대회에 초청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스폰서가 있고 갤러리까지, 아마추어대회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는 최운정은 "제대로 골프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뼈저리게 들었다"고 했다. 2007년 7월30일, 최운정은 과감하게 국내 투어를 포기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서다. 경찰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퇴직금을 몽땅 투자했고, 세계적인 교습가인 마이크 벤더를 만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 "행복을 드립니다"= 최운정이 갑자기 미국에 첫 발을 내딛었던 순간이 생각났는지 "가장 재미있고 즐거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미국에 처음 가서 3개월 동안"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새로 배우는 모든 게 즐겁기만 했고 운이 좋아 당시 아카데미의 수석 코치였던 장재식 프로(PGA A클래스 티칭프로)를 만나 훈련도 순조로웠다"고 회상했다.
최운정은 사실 성격 좋기로 유명한 선수다. 옆에 있던 최운정의 스폰서 볼빅의 김주택 마케팅부장이 "함께 프로암을 했던 아마추어는 모두 팬이 된다"며 "LPGA투어에서는 '행복 바이러스'로 통한다"고 거들었다. 지난주에는 LPGA투어 하나ㆍ외환챔피언십에 출전하기 위해 국내에 들어온 동료 11명을 모아 거나하게 저녁까지 샀다. 이 대회 챔피언조에서 경기했던 캐서린 헐(호주)은 "불고기와 갈비, 파전에 소주를 마셨다"며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았다.
가장 친한 친구는 지금 국내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미림(23ㆍ우리투자증권)이다. 2011년부터 매년 1승씩을 놓치지 않은 선수다. 원하는 동반자 포섬을 구성해 보라는 요구에 "타이거 우즈와 애덤 스콧, 그리고 이미림"이라고 선택했을 정도다. 최운정은 "내가 미국에서 먼저 자리 잡았지만 (이미림과) 머지않아 같이 뛸 날이 올 것"이라며 절친을 챙겼다.
▲ "부족한 2%는?"= 2008년 퀄리파잉(Q)스쿨을 거쳐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LPGA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다. "투어 카드만 받으면 다 되는 줄 았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최운정은 "TV에서 보던 선수들과 함께 플레이 하다 보니 오히려 내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며 루키시즌을 돌아봤다. 국내에서는 2005년 한국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하는 등 화려한 아마추어시절을 보냈지만 프로 데뷔 이후에는 정작 우승이 멀기만 했다.
지난해 매뉴라이프클래식에서 박인비(25), 서희경(27), 브리타니 랭(미국)과 연장혈투 끝에 패배하는 등 운도 따르지 않았다. 지난 시즌 3위 입상 3차례를 포함해 '톱 10'에만 7차례 진입했다. 하지만 "우승은 없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나아지고 있고, 연초 세운 목표는 대부분 달성했다"는 최운정이다. 실제 기술적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다. 드라이브 샷의 페어웨이안착률이 평균 78%, 아이언 샷의 그린적중률 75%로 투어에서 3위다.
"지난해는 준우승에 만족하고, 이제는 예전과 다르게 내 플레이에만 집중할 수 있는 방식을 배우고 있다"는 최운정은 "우승했을 때의 느낌을 모른다는 게 안타깝지만 머지않아 기회가 올 것"이라며 "일단 첫 우승을 하면 경기 운영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다음 대회를 기약했다.
손은정 기자 ejs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