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캠퍼스 성범죄, 잊을만 하면 또...

몰카찍는 교수들... 더듬는 남학생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여대생 이예진(가명) 씨는 같은 과 A교수의 제안으로 술자리에 참석하게 됐다. A교수는 평소 온화한 성격으로 학생들로부터 평판이 좋았기 때문에 전혀 경계심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술이 들어가자 A교수는 돌변했다. "예쁜 여학생과 같이 있다"며 자신의 친구들을 불러들이고, 자리에 참석한 여학생들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등의 추태를 부렸다. 술을 잘 먹지 못하는 한 여학생에게는 "점수를 잘 받고 싶으면 마셔라"는 등의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씨는 "학생들은 누구나 학점을 잘 받고 싶어하는데, 교수가 이를 자신의 권력으로 여겨 악용하는 것을 참아야 하는 게 서럽다"고 하소연했다.  대학가 캠퍼스 내의 성범죄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고려대의 '몰카 성추행' 파문처럼 학내 성범죄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실정이다. 학내 성범죄는 A씨의 경우처럼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사례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학교'라는 특수성 때문에 피해자의 신상이나 학습권이 보호받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280개 대학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각 대학 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성범죄 사례는 2009년 평균 0.6건에서 2010년 0.8건, 2011년 1.2건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신고된 것만으로도 한 대학마다 평균 1건이 넘는 성범죄가 일어나며, 매년 수백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접수된 사건 가운데는 가해자가 같은 학생인 경우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교수, 직원 등의 순을 보였다. 피해양상은 언어적·신체적 성희롱이 가장 많았다. 동급생들 간에 일어나는 성범죄는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범죄 유형이지만 이를 명확하게 처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줄어들지 않고 있다. 대학에 들어오면서 이성교제는 자유로워졌지만 이에 따른 의식은 제자리걸음을 보이면서 데이트 폭력 등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지나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학교라는 공간의 특성상, 성범죄가 발생해도 이를 외면하려 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며 "특히 '데이트 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도 학교나 사회에서는 이를 둘 사이의 문제라든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해서 생겨나는 일 정도로 사소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교수와 학생이라는 권력 관계를 이용한 성범죄도 문제다. 최근 고려대에서는 교수가 연구실에서 여학생들을 몰카로 찍어온 게 드러나 사표를 냈으며, 충남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도 제자를 성추행한 교수가 해임됐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에 비하면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실제로 서울 소재 A대학에 재학 중인 김 모씨는 술자리 도중 교수로부터 허벅지를 만지는 등의 성추행을 당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다가 결국 휴학을 했다. B대학에 다니는 최 모씨 역시 매일 밤마다 교수가 보내는 "예쁘다", "뭐하니?" 등의 문자에 시달렸다. 최 씨는 "교수의 연락이라 못 본 체할 수도 없고, 신고를 하기도 마땅하지 않아 그냥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처럼 학내 성범죄 피해자들은 학교 내 소문이나 신상, 학습권에 대한 우려 때문에 신고하기를 꺼린다. 서울 소재 대학교에 다니는 이 모양은 "학교 내 성범죄가 발생했다는 소문이 나면 금방 가해자는 물론이고 피해자까지 신상이 털리기 때문에 함부로 신고하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범죄 사실을 입증해내기는 더욱 어렵다.  이에 따라 학교 내에서 예방교육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신고 및 상담센터도 제대로 운영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인권위 조사에서 학내 성희롱 및 성폭력 상담소를 별도로 설치한 대학은 전체 26%에 불과했다. 상담기구의 예산도 1000만원 미만에 그치는 경우가 60% 이상을 차지했다. 김현정 인권위 조사관은 "대부분의 대학들에 성범죄와 관련된 학칙이 있지만 이를 전담 처리하는 기구나 인력 상황은 열악하다"며 "전문 상담센터로 지정만 해놓고 직원이 행정업무 등의 기타 다른 업무들을 병행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조민서 기자 summer@ 하지혜 인턴기자@<ⓒ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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