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문화 '푸른빛 추억'에 취한 대한민국

학교 이어 서울시 등 체험프로그램 유행...방송서도 시청률 고공행진...시민단체 '주입식 교육, 청소년층 무분별 확산 우려'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최근 들어 '군대 문화'가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최근 사고가 발생했던 사설 해병대 캠프 등 우후죽순 생겨난 극기 훈련을 내세운 병영체험 캠프, TV 예능프로그램의 군대 열풍, 밀리터리 마니아의 확산에 이르기까지 군대 문화의 유행은 전방위적이다. 1990년대 초 군사독재가 끝난 후 한동안 '군대 문화'에 부정적이었던 사회분위기와는 딴판이다. 이같은 군대 문화 열풍에 대해 전문가들은 보수화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인위적으로 부추겨진 측면이 있는 한편 군대에 얽힌 향수를 자극하는 정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18일 발생한 충남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고등학생 5명 사망 사건은 '단결', '극기', '상명하복', '조직력'을 강조하는 군대식 극기 훈련 캠프가 학교ㆍ회사 등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로 볼 수 있다. 이처럼 해병대나 공수부대 등 육체적 단련의 상징처럼 된 특수군사조직의 훈련을 모방한 극기 훈련 캠프는 '삼청교육대'의 추억이 남아 있던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밀리터리 마니아가 등장하고 청소년ㆍ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수련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군대문화는 확산되기 시작했다. 최근 서울시에서도 신입 공무원들의 훈련 프로그램에 특전사 등 군대 훈련 체험을 필수코스에 포함시켰다. 지난 4월 서울시 새내기 공무원들은 충북 증평군 증평에 있는 특전사 제13공수특전여단에서 가파른 산길을 뛰어오르고 10가지 동작으로 이뤄진 유격 체조를 받으며 연병장을 굴렀다. 서울시는 신입 공무원들의 심신을 단련하고 함께 소통하는 조직적응 능력을 강화시키고, 도전과 단합 정신ㆍ국가관ㆍ공직관 확립 차원에서 이같은 군사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했다는 입장이다. 민간에서도 엇비슷한 상황이다. 지난해 외환은행 신입행원 94명은 50여km 야간 행군 훈련을 했다. 하나은행은 2011년 업무 능력미숙을 이유로 직원 29명을 사설 해병대캠프에 입소시켰다. 경남은행도 지난해 신입행원들을 해병대에 입해 훈련을 받도록 했다. 대학입시를 앞둔 청소년들도 체력단련ㆍ공동체 의식 함양ㆍ극기 훈련 등을 내세워 병영체험 훈련을 받고 있다. 2012년 한해 동안 국방부가 시행한 병영체험훈련에 입소한 청소년은 74만명에 달했다. 이밖에 TV에선 연예인들이 직접 군대에 입소해 각종 훈련과 내무반 생활을 직접 체험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리얼모드'로 다룬 '진짜 사나이'가 일요일 오후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예비역 남성들이 술자리에서 떠들어 대는 농담성 군대 에피소드들을 모아 극화한 '푸른거탑'이 케이블TV 프로그램 중 보기 드물게 높은 시청률과 많은 화제를 몰고 오기도 했다. TV 뿐만 아니라 온라인ㆍ오프라인을 막론한 밀리터리 마니아들도 확산 추세다. 이들은 군대 용품을 함께 구입해 체험해 보거나 사설 캠프에 입소해 모의 총기로 군사 훈련을 해보는가 하면 전세계의 최첨단 무기와 전투ㆍ전쟁ㆍ군대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등 군대 문화를 '취미' 생활로 즐기고 있다.이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보수정권의 연이은 집권 및 남북관계 악화에 따른 사회적 분위기, 군대 특유의 문화를 추억으로 간직한 사람들의 정서적 공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상명하복ㆍ단결ㆍ극기 등의 덕목이 강조되는 군대 문화는 현대 민주사회에 부합하지 않는 만큼 무분별한 수용과 확산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성역'이었던 군대가 금기가 깨지고 '속세'로 내려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보수정권들이 사회적으로 안보를 강조하면서 청소년 병영체험 등을 주입식으로 강요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전쟁과 폭력에 무감각해지게 하는 군대문화는 조화ㆍ타협ㆍ협상력을 키우고 공동체를 평화롭게 이끌어가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할 청소년들에게 독약이나 마찬가지"라며 "특히 예능이나 버라이어티쇼에서 군대에 대해 '꼭 다녀와야 인생에 성공한다'고 묘사하는 것은 왜곡된 국가관ㆍ안보관을 주입시키는 것으로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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