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불황속에서도 최고급 아파트가 잘 팔리는 이유?

[아시아경제 김창익 기자]중학교 때 아버지 사업이 잘 안 돼서 단독주택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당시 아버지는 이삿짐을 싸시면서 가족들에게 '단독주택으로의 귀환'을 약속했다. 언젠가 사정이 좋아지면 다시 앵두와 보리수 나무를 심은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겠다는 다짐이었다.어린 시절 아파트는 그런 것이었다. 대전에서 엘리베이터가 처음 설치된 삼부맨션이 부자의 상징이 되고, 연탄 보일러가 설치된 가장동 주공아파트 단지가 중산층의 주거단지로 부상한 한참 후에도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아파트는 동경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서울로 유학을 와 신문사에 입사하고 처음 전셋집을 마련한 게 강남 도곡동 주공아파트였다. 지금은 '도곡렉슬'로 바뀐 이 아파트는 부엌 천정의 배수관이 다 보이는 39㎡짜리의 서민 주택이었다. "이런 집에서도 사람이 사나?"하면서 전셋값 싼 맛에 들어간 그 집은 재건축 후 강남 부촌의 상징이 됐다. 경제신문 기자라면서 재테크의 기본도 모르고 사는 것 아니냐는 자책이 나올법도 하다.당시 자전거를 타고 동네 산책을 할 때 보았던 타워팰리스 지하 기초 공사현장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지하 공간이 하나로 통합돼 "이렇게 큰 아파트가 있나?"란 생각을 했었다. 당시만 해도 주상복합이라면 시장통에 1층은 상점인 나홀로 아파트가 대부분이어서 머릿속엔 슈퍼마켓과 영세 상점이 즐비한 거대한 나홀로 아파트를 떠올렸었다. 완공 후 이 주상복합은 초고층 주상복합 시대의 개막을 알리며 부자들의 대표적인 주거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2006년을 전후로 강남 초고층 주상복합 시세는 3.3㎡당 1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수직상승했다. 돈이 있어도 '일정 스펙' 이상이 아니면 커뮤니티에 끼지 못한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비난과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 됐다.2007년 말 이후 아파트 시세가 하락세를 타는 가운데서도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며 최고급 아파트 수요는 지속됐다. 2008년 분양된 성수동 '갤러리아 포레'는 3.3㎡당 평균 분양가가 4000만원을 처음 넘기며 화제를 모았다. 작년엔 소수가 웃돈이 붙어 거래가 이뤄지면서 '불황의 섬'으로 각인됐다. 고가 아파트의 진화는 계속 진행중이다. 최근 배우 정우성이 구입해 유명해진 삼성동 라테라스 빌라의 경우 분양가가 55억원이나 한다. 한강 조망이 가능한 16층 건물에 달랑 18가구 규모니 한 층에 한 가구인 셈이다. 최고급 인테리어와 외장, 사생활 보호를 보장하는 최첨단 시스템 등으로 강남 고급 주거단지를 원하는 신흥 부유층의 타깃이 되고 있다. 주택 시장 침체 속에서도 일부 최고급 아파트가 웃돈이 붙어 팔리는 이유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에서 10억원 이상 아파트를 당장 현금을 들고와 살 수 있는 자산을 가진 사람이 10만명을 웃돈다. 절반만 따져도 서울에만 5만명 이상이란 얘기다. 반면 이들이 사고 싶은 고급 아파트는 타워팰리스와 아이파크, 갤러리아포레 등을 모두 합쳐서 1만가구가 넘지 않는다. 지금도 그들이 원하는 주거 조건만 충족되면 당장 계약을 하려는 사람이 수만명 대기중이란 얘기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최근 분양된 래미안 위례신도시 펜트하우스가 수백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것도 고급 주택에 대한 잠재 수요를 입증한 것"이라며 "수요에 맞는 맞춤형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불황기 건설사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김창익 기자 window@<ⓒ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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