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은 너무 분한 경기였다"라고 말하는 곽태휘 [사진=정재훈 기자]
[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곽태휘(알샤밥)은 시쳇말로 상남자다. 잘생긴 외모와 건장한 체격 때문만이 아니다. 경상도 사나이인 탓인지 말수가 적고 표현이 서투르다. 대신 말과 행동엔 늘 힘이 실려있다. 실수나 잘못을 괴로움이 아닌 개선의 대상으로 여긴다. 주위를 잡아끄는 묘한 카리스마의 원천이다. '남자 곽태휘'가 그래서인지 '선수 곽태휘'도 단단하다. 학창시절부터 대표팀까지 수많은 지도자들이 주장 완장을 맡긴 건 우연이 아니다. 말 많고 탈 많던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을 마친 뒤에도 그는 여전했다. 그간 숱한 부상과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났듯, 이번에도 남자답게 툭툭 털고 새로운 미래를 그린다. 월드컵 최종예선 마치고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쉬었나. 이제 겨우 고향 구미에서 2~3일 쉬었다. (박)지성이형 자선경기 차 중국에 다녀오고, 부모님도 뵙고, 왔다갔다 하느라 바빴다. 오늘(1일)도 (기)성용이 결혼식이 있어 서울로 올라왔다. 가서 인사만 하고 오련다(웃음).최종예선을 마친 기분은 어떤가. 8회 연속 본선 진출이란 목표는 이뤘지만, 우리가 준비하고 원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 부분에서 아쉬운 게 많다. 지나고 나면 다 후회되기 마련이라 해도, 이번엔 유독 더 심했다. 이란전은 특히 그랬을 것 같다. 부상으로 벤치를 지킨 데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도 패했다.그런 경기는 처음이었다. 앉아서 보다가 후반 실점 뒤부터는 앉아 있지를 못하겠더라. 끝나고 어이없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란 감독부터 선수들까지 달려들어 도발을 하는데... 막말로 한 대 치고 싶었다. 월드컵 본선도 못 나가고 큰일이 날 것 같아 겨우 참았다. 자존심도 상하고 열도 받고... 치욕적이었다. 너무 힘들었다. 최종예선 내내, 대표팀 수비수들이 지겹게 들은 질문이 있다. 바로 세트 피스다. 노이로제가 왔을 법한데. 그러니까 말이다. 처음 한 두 경기는 우리 실수도 있었고, 상대가 워낙 잘해서 들어간 골도 있다. 나중엔 그렇게 하라고 해도 안 될 만큼 골을 먹으니까... 강박관념까지 생기더라. 주변에서 워낙 말이 많다보니 우리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연습도 많이 하고, 집중하자는 얘기도 했는데 또 실점할 땐 할 말이 없더라. 그러다보니 코너킥 상황만 되면 더 긴장하고, 불안하고, 위축되고...(한숨) 징크스가 생길 정도였다.솔직히 억울하다. 그동안 주변에서 '대표팀 수비 불안하지 않냐'라고 물으면 늘 '곽태휘가 있어서 괜찮다'라고 답했다. 소속팀에서 보여준 곽태휘의 기량은 아시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대표팀에선 그만큼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프로팀과 대표팀은 다르지 않겠나. 또 예전에 2011 카타르아시안컵에서의 큰 실수가 팬들의 뇌리에 박혀있는 것 같다. 잘하든 못하든 그 얘기가 나온다. 어쩔 수 없다. 수비라는 자리자체가 그렇다. 99개를 잘해도 하나를 못하면 비난받는다. 공격은 리오넬 메시처럼 혼자 잘해서 골을 넣을 수 있지만, 수비는 절대 혼자 못한다. 네 명, 그 이상의 팀워크로 해나가야 한다. 최종예선 내내 수비진도 워낙 자주 바뀌었고, 골도 먹으면서 그런 질타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크게 신경 안 쓴다. 한 경기 잘못했다고 내 축구인생 끝나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 그래도 대표팀에서의 곽태휘가 다소 발이 무거워 보인 게 사실이다. 아시안컵에서 두 경기 연속 페널티킥을 내준 이후 생긴 부담 탓이었을까.조별리그 첫 경기 바레인전(2-1 승)에서 PK를 내주고 퇴장까지 당했다. 당시엔 만회하고픈 마음에 조급함이 생겼다. 인도전(4-1 승)에서 공을 머리에만 맞추면 PK가 아니었는데, 쫓기는 마음에 실수가 나왔다. 반면 이후 대표팀에선 조급했다기보다 준비한 만큼 보여주지 못했단 아쉬움만 컸다. 나는 다친 뒤에도, 부진한 뒤에도 그런 경험을 계기로 더 성장하겠단 생각만 한다. 그랬던 곽태휘이기 때문에, 이란전에서 실수했던 김영권이 더 안타까웠을 것 같다.영권이가 경기 끝나고 고개 숙이고 눈물도 흘리더라. 옆에 가서 '네 잘못이 아니다. 전체가 잘못해서 그런 거니 너무 상심마라. 목표는 이뤘으니 괜찮다'라고 다독였다. 어떤 의미였는지 다 알아들었을 거다. 앞으로 더 크게 될 선수다. 잘못을 자기 경험으로 받아들이리라 믿는다.
2011 카타르아시안컵 이후 무수한 비난에 시달렸던 곽태휘 [사진=정재훈 기자]
기억에 아시안컵 전까지 곽태휘는 대표팀 수비수 가운데 거의 유일한 '안티 없는 선수'였다.맞다. 대회 직전 부상으로 2010 남아공월드컵에 못 갔을 땐 위로도 많이 받았는데(웃음), 아시안컵 이후론 질타만 이어졌다. 원래 악플 같은 것도 안보는 편인데, 댓글들을 우연히 보고 처음엔 기분 나쁘고 적응도 안 되더라. 솔직히 듣기 싫다. 골 안 먹고 좋은 소리만 듣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닌가. (웃음) 신경 쓰이진 않나. 아내나 가족이 보는 게 걱정될 뿐, 연연하지 않는다. 프로 아닌가. 운동장에서 보여주면 된다. 감정이 왔다 갔다 할 나이도 지났고, 이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뭔가를 마음에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다. 누가 욕하는 걸 보면 '아 그렇구나'하고 넘어간다. 또 실수할 수 있다. 그럼 그걸 줄이려고 노력하면 된다. 안티팬도 넓게 보면 내 팬 아닌가. 비판을 받아들이고 발전한다면 훗날 팬들도 알아줄 거다. 지난 3월 카타르전(2-1 승) 직전에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다들 결장이라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흘 남겨두고 훈련에 나오더니, 경기 당일 풀타임까지 뛰었다. 최강희 감독은 병원의 오진이라고까지 말했는데.다친 건 사실이었다. 소속팀 경기 후 병원에 가보니 허벅지 근육이 찢어졌다. 당연히 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부상 부위 주변 근육이 워낙 발달해 통증을 많이 못 느꼈고, 회복 속도도 워낙 빨랐다. 대표팀 소집 후 근처 병원에 다시 갔더니 흉터만 남았지 다 나았다. 의료진도 의아해할 정도였다. 그래서 감독님도 오진이라고 하신거다. 아마 간절함 덕분이었던 것 같다. 정말 뛰고 싶었고, 그런 바람이 내 몸에 긍정적 에너지를 부여한 게 아니었을까. 작은 기적이었다. 쩝. 2010년에 그랬어야 했는데...(웃음).이청용은 정강이 부상 이후 후유증을 털어내는데 1년 넘게 걸렸다. 곽태휘도 사실 만만찮게 큰 부상을 당했다. 2008년 왼발목 인대-오른무릎 십자인대 파열, 2010 남아공월드컵 직전 왼무릎 내측인대 파열. 그런데 이후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금세 제 기량을 발휘했다. 난 부상 뒤 회복이나 적응이 빠른 편이다. 경기 감각도 쉽게 돌아오는 편이고. 보통 부상선수는 트라우마가 있다. 비슷한 장면이 오면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난 그런 게 별로 없다. 오히려 두려움에 적응하고 극복하려고 했다. 성격 자체가 그래서 그런가? 소심했다면 그렇게 못했을 거다.
곽태휘는 숱한 부상에도 트라우마 없이 곧바로 재기한 대표적 선수 가운데 하나다. [사진=정재훈 기자]
좋은 성격인거 같다. 그래서 보는 이들도 '곽태휘는 큰 부상을 당했던 선수'라는 걸 종종 까먹게 된다.축구를 고등학교 1학년 때서야 시작했다. 주전자 나르고 온갖 혹평 들으면서도 남모르게 노력했다. 그런데 이듬해 축구공을 맞고 왼쪽 눈이 실명됐다. 운동을 못한단 얘기를 듣고 너무 억울했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왕 다친 거 끝까지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결국 프로선수도 되고 대표팀에도 들어갔다. 어쩌면 시련을 딛고 일어나는 방법을 일찍 깨우친 셈이다. 재활 중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 편이다.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끊임없이 생각한다. 덕분에 경기장에 나서면 바로 몸이 반응하는 것 같다.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다쳤을 당시 미니홈피에 써놓은 글귀를 기억하나. '세상이 가끔 나를 힘들게 만들어도 나는 결코 세상에 지지 않는다'였다. 기억난다. 사실 2008년에 다쳤을 때 써놨던 거다. 계속 부상이 반복되다보니 나중엔 '그래. 계속 시련 줘봐라. 다 이겨내주마'라고 생각했다. <html>전성호 기자 spree8@정재훈 사진기자 roz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골프스포츠부 전성호 기자 spree8@사진부 정재훈 사진기자 roze@ⓒ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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