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임]러시아 한국어 능통한 '난민들의 대변인'

'한국, 한민족 의식 강하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더 많은 지원을

[아시아경제 김지은 기자]
"대한민국이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한 만큼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신청자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면 좋겠어요."'세계 난민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만난 우즈베키스탄 출신 난민 주바이도바 롤라씨(43ㆍ사진)의 표정은 절실했다.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사상 또는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어 외국으로 도피해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국적국의 보호를 원치 않는 자'를 뜻한다. 러시아어에다 한국어에도 능통한 그녀는 법무부에서 난민전문통역인으로 위촉돼 난민신청자 심사 과정의 의사소통을 돕고 있다. 한국을 알고 싶어 2000년 처음 한국에 온 그녀는 그 후 총신대학교 신학과에 입학, 졸업 후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 전도사를 할 생각이었다. 남편도 목사가 되기 위해 유학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같은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2008년 남편이 여권 연장을 위해 고국을 가게 됐을 때 롤라씨에게 불행이 닥쳤다. "혼자 우즈베키스탄에 갔던 남편이 갑자기 행방불명됐어요. 이슬람교가 아닌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정부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었던 거죠." 인구의 약 90%가 이슬람교를 믿는 우즈베키스탄은 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다행히 남편은 잠시 풀려난 사이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 "이후 다행히 다니는 교회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난민신청을 했고 2010년에 저와 가족 모두가 난민으로 인정받아 함께 한국에서 계속 살게 됐어요." 하지만 난민신청을 하고 인정을 받기까지 생계를 잇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난민신청 기간에는 법적으로 취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야채 장사를 하면서 돈을 벌었지만 난민센터와 교회의 도움이 없었다면 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회상한다. "저는 기독교인이라 교회의 도움을 받았지만 기약없이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다른 난민신청자들을 보면 일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된다"고 그녀는 말했다. 또 자신은 난민으로 인정받고 난 뒤 난민센터에서 통역사로 일하다 운좋게 일자리를 얻었지만 다른 난민들은 난민으로 인정을 받은 후에도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한민족 국가'라는 인식이 강해 외국인들에게 보수적이었지만 이제 난민법도 시행되니 난민신청자들과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줬으면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다문화 강사가 되고 싶어 현재 경인교대에서 관련 수업을 듣는 그녀는 수업에 결혼이주여성 친구들이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결혼이주여성들의 한국문화 이해를 돕는 자원봉사도 하고 있는 그녀는 "한국남자와 이주여성이 결혼 후 문화차이 때문에 불화를 겪는 것을 종종 봅니다. 나중에 한국문화센터를 지어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몽골, 베트남 출신 사람들과 한국인들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꿈이에요"라고 말했다.김지은 기자 muse86i@<ⓒ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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