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변곡점(變曲點)을 필기구로 말하라 한다면, 나와 샤프연필과 만년필 간의 삼각관계를 말할 것이다. 최근 일 년 사이 나는 샤프연필이라는 여자에 대한 정성이 성기어지고 만년필이란 여자에 마음이 기울고 있는 중이다. 아직 이쪽도 저쪽도 다 밉지는 않은지라 미련과 애련(愛戀)을 한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양다리 사랑이다. 샤프연필에 대한 정(情)이 띄엄띄엄해진 건, 내 독서의 양과 질이 하향곡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샤프 뒤통수를 꼭꼭 눌러 알맞은 심을 빼낸 뒤 마음을 붙잡는 구절 아래에 밑줄을 긋던 행복은 얼마나 좋았던가. 간단한 부기(附記)나 소회, 혹은 참고사항, 아니면 다음에 읽을 독자들(아내나 벗들, 혹은 아이들)을 위해 소감을 겸한 안내글을 쓰던 때는 얼마나 달콤했던가. 내 손에서 책을 내려놓게 하는 건 문명이다.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이나 견문이 많아지면서 전보다 책을 소홀히 하게 된다. 이제 새 사랑 얘기를 좀 하자. 남대문 상가의 문구점에 가서 만년필을 샀다. 같은 상표로만 네 번째다. 이쯤이면 이 필기구의 용처(用處) 이상의 과소비다. 이걸 또 사게 된 이유는 이렇다. 오늘 급히 출근을 하느라, 즐겨 쓰던 검은색 만년필을 집에 놔두고 왔다. 그걸 알게 된 건 택시 안이다. 오전에 급한 약속이 있어서 차를 되돌려 그것을 가지러 갈 시간이 없었다. 낯선 사람들과 세미나를 하면서도 내내 만년필 생각뿐이었다. 그게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왜 그리 만년필을 쓸 일이 많이 나오는지! 무엇인가를 적어야 하는 회의에서 '내 만년필'이 없다는 건, 입을 틀어막는 손이 있는 것 같은 '언론 탄압'이다. 회의가 끝난 뒤 남대문 시장으로 달려가, 앞뒤 돌아보지 않고 만년필을 사게 된 건 그 때문이다. 그걸 손에 쥐었을 때 생겨나는 안도감과 흐뭇함의 크기는, 오랜 금연 끝에 담배 한 모금을 들이킨 기분을 방불한다. 만년필 금단(禁斷)에서 해방된 나는, 즐겁게 이 글을 쓰고 있다. 그 이름 '만년'은, 필기구가 지닌 '놀라운 능력'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품는 사랑의 유통기한을 함의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처음 좋아질 무렵에 '만년애(萬年愛)'를 꿈꾸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찬찬히 들여다본다, 귀여운 여자같이, 까만 만년필 하나. 글=향상(香象)<ⓒ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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