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 개집에 묶여있다. 큰 아버지는 가끔씩 나타나 그를 때린다. 개들이 짖지 않는 동네, 아이가 짖는다. 그가 짖으면 큰 아버지는 어김없이 나타나 더욱 세차게 그를 때리기에 그는 굳은 돌처럼 고요해지고 살점을 파고드는 매들이 채찍채찍 우는 것이다. 아이의 등은 밤하늘 같다. 붉은 은하가 개집으로 들어가 몸을 오그리고 잠든다. 웅크린 꿈 속에 다시 큰 아버지가 나타나 매를 든다. 개집이 들썩거리는 밤 등에 내려앉은 별들이 뒤룩뒤룩 꿈틀거린다. 별들은 벌레처럼 온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지만 어떤 목소리도 짖지 않는다. 짖지 않는 두 입술을 손으로 잠근다. 고요하고 고요한 동네, 큰 아버지가 잠든 마을. 별빛은 용각산처럼 소리가 나지 않는다.이빈섬의 '개집에 묶인 아이' ■ 개가 우리 욕설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까닭은, 그 짐승들이 우리의 욕설을 온전히 받아주는 성자(聖者)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정신지체자로 태어나 부모도 없이 학대받는 어느 소년의 이야기를, TV로 보면서 등이 시린 큰 슬픔을 느꼈습니다. 우리라는 존재의 일부는 왜 이렇게 실없이 태어나 어이없는 삶으로 울다 가는 것일까. 개집에 묶여 살면서 정기적으로 채찍을 맞으며 신음을 몸속에 가두는 아이. 이 현실은 상징이기도 하지만, 격렬한 풍자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린 누군가에게 저토록 잔인한 큰아버지가 아닌가, 우린 누군가에게 '개'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가하는, 상상력 없는 권력자가 아닌가, 그런 반성을 해 보게 됩니다. 그것이 사람이기에 더욱 아픈 스토리가 되었지만 그것을 당연한 삶으로 받아들이며 깨갱깨갱 살아가야 하는 개들에게도 가만히 미안해졌습니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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