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호국보훈의 달에 건설근로자가 생각나는 까닭

이진규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

"섭씨 40도가 넘는다. 눈을 뜰 수가 없을 만큼 모래바람이 몰아친다. 밥을 먹으면 모래가 씹힌다. 전기불도 없어 횃불을 밝혀 자정까지 일했다." 숨이 막히는 열기와 모래폭풍에 맞서 중동의 오일달러 사냥에 나섰던 1970년대, 한 건설근로자의 일기장에 적힌 구절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호국보훈이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공이 있는 분들을 기억하고 추모하여 그들의 공로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호국보훈의 달에 왜 갑자기 건설근로자가 생각나는 것일까.  1960~70년대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로 건너간 간호사와 광부들, 그리고 열사의 땅 오지에서 피보다 더 진한 땀을 흘리며 사투를 벌인 건설근로자들. 이들은 바로 우리가 배고팠고 못살았던 그 시대의 상징 인물들이다. 제품을 생산하여 수출할 여건을 전혀 갖추지 못했기에 인력송출이라도 해서 외화를 벌어야겠다고 나선 당시의 모습은 오늘날 돌아보면 너무나 슬픈 자화상이다.  초기의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개인적ㆍ가정적 차원에서 해외로 나갔다면, 중동 건설현장에 진출한 건설근로자들은 국가적ㆍ산업적 차원에서였다. 자본이나 기술이 절대 부족한 우리가 건설이라는 무기를 들고 사막의 땅으로 진격한 것은 한국 경제성장의 멋진 전진기지를 구축한 것이라고 평가된다.  그 당시 중동에 진출한 건설인력은 수십만 명에 달했다. 국내 근로자보다 3~4배 많은 임금을 받았지만 한 푼도 헛되이 쓰지 않고 조국으로 부쳤다. 향수병에 시달려가면서도 '근검과 성실, 도전정신'으로 중동특수를 멋지게 일궈낸 것이다. 덕분에 이 돈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루는 주춧돌이 됐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산업파급력이 큰 건설업의 해외진출이 활발했던 데에는 경부고속도로를 밀어부친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이 한 몫 단단히 했다. 해외건설촉진법 제정 등을 통한 금융ㆍ세제 면에서의 파격적 지원 등이 그 결실을 맺게 한 것이다. 물론 현대건설을 이끌고 중동을 누빈 정주영 회장 같은 선구자들이 있었기에 더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경제 부흥을 다지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견인해 온 건설근로자들의 현 주소는 어떠한가. 고용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노임은 10여 년 동안 제자리에만 있으며, 자식들에게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주고 싶은 간절함은 잊혀진 지 오래됐다. 기초적인 건강검진마저 사치처럼 들릴 정도이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날마다 새벽에 나가야 하며 작업현장까지 서너 시간 이동도 마다하지 않는 삶이 오늘 그 분들의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그러나 건설근로자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를 않는다. 국민 4대 보험조차 제대로 챙겨 받지 못하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건설근로자공제회에서는 결혼하고도 신혼여행을 못간 근로자들을 위해 제주도로 무료여행을 보내주는 행사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30가족 중 8명은 일거리가 있어 여행을 포기했다. 하루 일당을 벌지 못하면 생계가 위협받으니 좋은 기회지만 못 간다는 것이었다.  중동 건설현장에서 땀범벅을 하면서 오늘의 한국경제를 견인해 온 건설근로자들의 패기와 도전정신을 지금은 기대하기 힘들다. 국가경제를 단단히 버텨주는 주춧돌이면서도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오랫동안 반복되며 실망을 줬기에 그렇다. 또한 중동에서 흘린 그들의 땀방울이 국가부흥의 초석을 다졌다고 기억하는 이가 드물기도 하다.  우리 조국을 지켜내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호국영령을 기리는 6월의 한 복판에, 전국 방방곡곡과 전 세계를 누비면서 피와 땀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의 기초를 다진 건설근로자들의 고단한 삶을 한번쯤 돌아봤으면 하는 바람이다.이진규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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