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詩]강희안의 '작은 부호의 자세' 중에서

풍요로운 문장이 끊길 듯 이어질 때 마침 쉼표와 부딪친다 그는 이미 뒤에 붙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꼬리를 웅크린채 잠들어 있거나 꼬리를 흔들며 앞으로 나가느라 여념이 없다 (......)/어느 날 저녁 그가 자궁에 머리를 묻었던 힘으로 책을 짓는다 물찬 말의 꼬리를 자르고 나서야 새로운 종지부를 찍었던 것이다■ 그림과 글자가 넘나들던 시절, 상형문자와 알타미라나 몽골의 암각화들. 문자가 태동하기 전, 그림을 그리는 인간들의 마음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았다. 그들은 문자를 몰랐으며 그림이 기호(sign)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문(文)이라는 한자는 '글자'라는 뜻도 되지만 '무늬(즉 그림ㆍ형상)'라는 뜻도 된다. 강희안은 글자가 아니라, 글자 사이에 들어가 어떤 역할을 하는 작은 부호를 주목하고 있다. 쉼표란 무엇인가. 글자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말로 이야기한 것이었다면, 반드시 그쯤에서 잠깐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 그곳에 찍히는 것이 바로 쉼표라는 부호가 아닌가. 시인은 그 부호의 형상에 해석을 입힌다. 꼬리가 달려 있는 마침표. 문자들이 KTX처럼 내달리는 가운데, 문득 아주 작은 형태로 찍힌 부호가, 그 문장을 홀연히 멈춰 세운다. 아주 세우는 게 아니라 잠깐 세우기에 더욱 긴박감이 있다. 그 올챙이 모양의 작은 부호가 지닌 힘과 매력. 시는 문자 속으로 들어가 하나의 올챙이가 되어, 관성적으로 움직이던 문장들을 급제동시킨다. 나는 쉼표의 꼬리가 쇠갈고리 같은 것처럼 느껴진다. 마침표처럼 붙박인 단단한 몸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급히 갈고리로 만든 제동장치를 달아 숨 가쁘게 끼익 세우는 형상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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