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노키아 살리기보다 작은 앵그리버드 키웠다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이 말하는 기업가정신은 '혁신'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1980년대 미쓰비시와 록펠러 재벌그룹으로 세계 경제 대국 1,2위를 다투던 미국과 일본의 현재 모습은 어떻습니까." 23일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은 역동적인 청년창업 활성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대뜸 이렇게 되물었다. 그는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해답을 찾다보면 양대 경제 대국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오버랩된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 경제의 26년 전후 모습을 비교해보면 청년창업 10만 리더 양성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고 회장은 "두 국가에서 이른바 '대장' 노릇을 하고 있는 기업이 누구인지 생각나는 대로 답해보라"고 했다. 거대한 재벌그룹의 힘으로 성장해 온 미국과 일본이 26년이 지난 지금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 회장은 "사람들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페이스북, 애플, 구글 등과 연결하지만 일본은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미쓰비시 뿐"이라고 꼬집었다. 작은 기업에서 출발해 혁신을 일궈낸 스타트업 일등기업들이 없었다는 얘기다. 고 회장은 "이같은 혁신 경제의 부재가 미국과 일본의 경제 현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양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에도 이같은 상황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제통화기금(IMF)가 발표한 4월 세계경제전망에 따르면 일본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6%로 세계 평균치인 3.3%과 미국의 2%대 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는 "작은 기업이 가장 강력한 성장 동력임을 입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기업에서 출발해 혁신 일궈야= 그는 성장 동력을 이뤄내는 것은 결국 '작은 기업'들이라며 청년창업가들이 지켜나가야 할 기업가 정신으로 '혁신'을 들었다. 고 회장은 "과거를 돌이켜보면 혁신은 작은 기업에서만 일어났다"고 지적하면서 성장 동력을 이뤄낸 작은 기업의 예로 핀란드의 로비오를 들었다. 핀란드는 스마트게임 '앵그리버드'를 탄생시킨 로비오의 나라로 유명하다. 핀란드 경제는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노키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핀란드 국가총생산(GDP)의 4분의1을 노키아라는 단일 기업이 담당할 정도였으니 말 그대로 노키아 왕국이었다. 그러던 노키아가 2007년 위기를 맞게 된다. 삼성 애플이 주도하는 스마트폰 경쟁에서 뒤지면서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GDP의 25%를 책임지던 노키아가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핀란드의 경제성장률은 2.3%대로 곤두박질쳤다. 노키아의 몰락이 핀란드 경제의 침몰로 직결됐다.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했던 노키아의 쇠락으로 몰락하던 핀란드가 드라마틱한 턴어라운드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 회장은 "그러나 노키아 부진은 핀란드에게 새로운 기회였다"며 "핀란드 정부는 노키아에만 기대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정책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핀란드 정부는 노키아 살리기 대신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을 택한 것이다. 핀란드 기술혁신투자청(TEKES)은 노키아가 직원의 창업을 전문적으로 돕는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노키아 퇴직자들이 세운 신생 기업만 300개가 넘었다. 사막에서 맨 손으로 땅을 파는 심정으로 매달린 것이다. 앵그리버드의 주인공 로비오도 이러한 초심 기업들 중 하나였다.
◆창업 교육과 엔젤 투자 활성화 중요= 고 회장은 혁신에 더해 창업 기업가 정신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창업 교육 체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제대로 된 창업 생태계가 구축되기 위해서 두 가지가 필요한 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사회는 청년창업가 양성을 위해 필요한 교육 기관들이 부재한 것이 사실"이라며 창업의 꿈을 본격적으로 키워 내기 시작하는 대학기관에서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일례로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알토(Aalto) 대학교는 학생들이 네트워킹을 통해 스스로 일자리를 만드는 데 몰두한다. 정부가 돈을 쥐어주며 생짜로 너희가 배워라는 식도 아니고 실리콘밸리처럼 완전한 민간 주도의 창업 생태계를 구축한 것도 아니다. 그는 "창업가가 전천후가 돼야 하는 척박한 우리의 창업 환경에서 창업문화를 활성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라며 "이를 위해 창업자들을 하나로 모아주는 '네트워크 장소(플랫폼)'를 많이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청년창업 관련 세계적인 벤치마킹 대상국은 민(民)이 주도하는 미국식이 아닌 관(官)이 주도하는 유럽식이 돼야 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고 회장은 조건 없이 투자하는 엔젤 투자자들이 늘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국내 엔젤 투자는 2000년 초반의 벤처 붐 이후 급격히 위축됐으나 지난 2011년 396명에 불과하다. 고 회장은 이에 대해 "올해까지 엔젤 투자자 1000명, 2020년까지 1만명으로 확대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정한 의미의 창업 생태계가 마련되기 위해서는 당장 가시적인 성과나 결과를 좇기보단 10년 이나 20년 뒤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새로운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이들이 시장에 빠르게 안착하도록 돕기 위해서 스타트업 발굴과 정부의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펼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중간자적 역할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미들맨이 활성화되면서 창업에 나선 이들이 실패하더라도 이를 용인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란 의미다. '대박'아니면 '쪽박'인 창업환경이 아니라 백업 플랜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회장은 "실패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신용 불량자가 되는 상황"이라며 "실패의 경험을 높이 사주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유진 기자 tint@<ⓒ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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