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노오란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트리며 겨울을 몰아내는 듯하더니, 이어 길가의 노오란 개나리가 오가는 마음을 봄으로 설레게 한다. 칙칙한 겨울을 밀어내는데 노오랑 색보다 더 효과적인 색이 있을까. 때를 같이하여 샛노랑, 새빨강, 새파랑 등의 옷, 가방, 그리고 신발까지 봄을 채워가고 있다. 2013년 S/S 트렌드로 비비드 컬러들을 제시했던 구찌, 루이비통, 엘리사브 등의 예측이 적중하고 있는 것이다. 비비드(vivid)란 생생한, 발랄한, (색ㆍ빛 따위가) 선명한, 강렬한 등의 뜻을 가진 형용사이다. 즉 비비드 컬러란 채도가 높아 눈에 확 띄는 선명하고 강렬한 색을 이른다. 비비드 컬러가 아니어도 색은 시선을 사로잡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찍이 계급을 구분하여 표현하는 수단으로 색을 이용하는 복색제도도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AD 260년(백제 제7대 고이왕대), 최초의 복색제도가 등장한다. 직급에 따라 윗옷을 묶는 여섯 가지 대(帶)의 색(자紫, 조?, 적赤, 청靑, 황黃, 백白)을 지정하고, 겉에 입는 비색(緋:붉은색) 옷은 평민에겐 금하고 관리만이 입도록 하였다. 신라는 이보다 250여년 뒤인 법흥왕대(AD 514~540)에, 자紫(진골이상), 비緋(6두품), 청靑(5두품), 황黃(4두품)의 4색 공복제도를 정했다. 이렇게 시작된 복색제도는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이에 반해 백성들은 염색 옷 사용을 금했다. 고려도경(송나라의 사신 서긍이 인종 원년인 1123년에 고려를 방문하여 보고 들은 것을 그리고 기록한 보고서)도 "고려에서는 염색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고, 백성이 꽃무늬를 넣은 비단을 입고 있으면 죄를 주고 그 옷을 압수하므로, 어기는 자가 없어서 여자의 옷은 흰모시 저고리에, 노랑치마 일색이었다"고 쓰고 있다. 흰모시라 하여도 오늘날 처럼 잘 표백된 새하얀 모시가 아니라 모시 본연의 색이고, 노랑도 삼베의 자연색, 또는 빛바랜 명주의 노리끼리한 색이었을 것이다. 가슴 아픈 역사도 색 속에 숨어 있다. 황색에 관한 이야기다. 본래 황색은 동서남북과 중앙을 가르는 오방색중 우주의 중심을 이루는 중앙 색으로, 군자(君子)의 색이었다. 따라서 중국의 황제만이 황색을 사용할 수 있었을 뿐, 우리나라의 왕들은 황색 옷을 입을 수 없었다. 고려 말 공민왕이 잠시 황포를 입었다하나 확실치 않고, 조선조 말, 황제가 된 고종이 잠시 황색포를 입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서양 문물의 홍수 속에 6ㆍ25 같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나라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황제의 색인 노랑은 물론, 염색 옷을 누구나 거침없이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눈에 튀는 색은 품위 없는 색, 야한 색, 촌스러운 색이라며 잘 사용하지 않았다. 아마도 다소곳이, 튀지 않고 더불어 아우르는 조화를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비비드 컬러가 이봄에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유행에 편승하고 있는 이 시대의 당당한 이 나라의 주인공들이 오랫동안 눌려왔던 색에 대한 갈망을 자기 PR 시대라며 가슴 펴고 활짝 받아들이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산업부 임혜선 기자 lhsro@ⓒ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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