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저는 두 개의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단하다고 말하는 분도 있지만,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느냐며 혀를 차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궁색합니다. 박사학위는 이미 아주 흔합니다. 연간 1만명 이상이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있고, 해외까지 합하면 그 수는 상당합니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서울이 인구당 박사 수가 가장 많은 도시라고도 합니다. 박사학위가 소수의 학계 사람들만이 취득하는 자격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시점에 도달한 셈이지요. 우리 말고도 인구당 박사비율이 매우 높은 전통을 지켜온 나라들이 있습니다.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교수나 연구원뿐 아니라 다양한 직업에 있는 분들의 명함에서 박사라는 호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나라들에 박사가 넘치는 것은 학비가 없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이겠지만, 사회적으로 박사를 우대하는 전통도 한몫을 합니다. 독일은 확실히 박사 혹은 교수에게 좀 다른 대접을 해 주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심지어 명함에 박사학위 표시를 세 번 반복한 사람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박사천국' 독일이 요즘 뜨겁습니다. 전직 미식축구 선수인 마르틴 하이딩스펠더라는 사나이 때문입니다. 하이딩스펠더는 표절 폭로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벌써 두 명의 장관을 낙마시켰습니다. 이들이 오래 전에 쓴 박사학위 논문의 표절을 찾아내 폭로했던 것이지요. 박사학위를 준 대학들도 서둘러 학위를 취소했습니다. 박사출신 정치인이 유난히 많은 독일에서, 앞으로 또 누가 박사학위와 정치적 생명을 한꺼번에 잃게 될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시원하다고 박수치는 사람들이 물론 많지만, 동정론도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자신의 전문성과 능력을 검증받은 정치인들이 수십년 전 논문 표절로 인해 물러나는 것은 사회적인 손실이라는 주장은 공감할 만합니다. 저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전혀 관련이 없는 전공으로 두 번의 학위과정을 했지만 학위과정 후반에 공부 시작한 것을 후회한 순간이 있었다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제대로 공부를 해 보겠다고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학위를 마치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과 만나는 것이지요. 이럴 때 표절의 유혹은 너무도 달콤한 얼굴로 다가옵니다. 모두가 이 유혹을 수도승처럼 고통스럽게 견디면서 박사과정을 마쳐야 하는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사과정을 꼭 마쳐야 하는 사람들은 사실 아주 소수입니다. 학계에 남아야 해서 박사가 필요하거나, 그 유혹을 견딜 만큼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런 소수만 학위를 받는 것이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명함에 박사를 찍으면 좀 으쓱거려도 된다는 생각, 박사는 좀 존경해 주는 문화, 그런 것들은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좋아서 시작한 일 잘 끝냈으니 스스로 대견해할 일인지는 모르나, 다른 사람이 존경해 줘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학문을 할 수 있는 수련이 돼 있다는 인정에 불과한, 그래서 학계 바깥에서는 도무지 쓸모가 없는 박사학위가, 때때로 세상에 몸을 던져 체득한 지식과 전문성보다 나은 것으로 대접받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표절로라도 박사학위를 받겠다고 작정한 분들의 배후에는 박사학위를 공연히 대접하는 문화가 있는 셈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표절 논란이 뜨겁습니다. 지금도 표절의 유혹을 느끼는 박사과정 학생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박사학위는 그런 방법을 쓰면서 얻어낼 만큼 위대하고 쓸모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 세상과 부딪치면서 얻어낸 현명한 지혜는 박사과정에서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박사 공부를 두 번 아니라 백 번 한다 해도 말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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