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뻑뻑해서, 체력이 약해서…한해 수천명 줄기세포 원정시술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수천명의 한국인이 아직 실험단계의 줄기세포치료제에 몸을 맡기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이들이 어떤 목적에서 시술을 받는지, 차후 안전성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지 파악도 않은 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24일 보건복지부와 줄기세포업체 알앤엘바이오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약 7000여명이 중국과 일본으로 건너가 줄기세포 시술을 받은 것으로 추산됐다. 앞선 2010년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국내에서 줄기세포를 투여하는 것은 약사법 위반이란 해석을 내놓자, 알앤엘바이오는 줄기세포 배양센터를 중국과 일본으로 이전했다. 당시 라정찬 알앤엘바이오 회장은 "지금까지 약 8000명이 국내외에서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다"고 밝혔다.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알앤엘바이오이 배양한 줄기세포를 투여받은 환자는 일본에서 2009년 이후 3700여명, 중국은 2008년 이후 1만 1500여명 등 총 1만 5000명에 달했다. 국내 시술이 금지되자 환자들이 해외로 건너가 시술을 계속해온 것이다. 알앤엘바이오는 이동거리와 현지 법 규정 등을 감안해 환자들을 중국과 일본으로만 안내하고 있다.한편 국내 환자들이 어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외국으로 떠나는지에 대해선 알앤엘바이오도, 보건당국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 측은 "우리는 시술이 가능한 현지 병원을 안내할 뿐 그런 정보는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청 관계자는 "대부분 미용시술일 것"이라고 했고,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사실상 만병통치약과 같이 쓰이는 듯하다"고 말했다. 2011년 1월 복지부가 검찰 수사를 의뢰하며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환자 50여명은 피부미용부터 천식, 심장질환까지 특정 질환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시술목적을 답했다. 심지어 '특별한 질병이 없다'면서도 시술을 받은 경우도 있고 '체력이 약해서', '눈이 뻑뻑해서', '만성피로' 등을 이유로 댄 경우도 있었다. 재활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 경우는 뇌졸중, 심장질환 등에 불과했다. 검찰 수사는 아직 종료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상황이 애매해진 사이 해외원정 시술은 오히려 활기를 띄고 있다. 복지부는 일본 마이니치 신문 보도가 나온 후에야 "안전성ㆍ유효성 검증을 거치지 않은 줄기세포 배양 무허가 의약품을 해외 의료기관 등을 통해 시술받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 주실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반면 알앤엘바이오가 환자를 안내하지 않고 현지 업체를 통해 시술이 이루어지는 미국의 경우는 좀 다르다. 2010년말 미국 네이처뉴스에 소개된 줄기세포 시술자의 증언에 따르면, 시술을 받은 20명 중 5∼6명은 다발성경화증, 4∼5명은 파킨슨씨병 치료가 목적이었다.현재 알앤엘바이오는 중국과 일본에 배양센터를 설치해놓고 현지 병원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오면 줄기세포를 내주는 방식으로 시술을 돕고 있다. 비용은 사례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알앤엘바이오측은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채취 및 보관, 그리고 해외에서 진행되는 2억 셀(cell) 배양에 패키지 개념으로 600만원 정도 받는다. 환자가 해외 시술을 받을 경우 현지 비용으로 100만원 정도가 추가된다. 즉 1회 기본 투여에 700만원 정도가 드는 셈인데, 환자가 효과를 봤다고 느끼면 이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알앤엘바이오 관계자는 "논란이 있는 시술법이란 것을 알면서도 수천만원을 들여 외국에서 시술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환자들이 절박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실험적 치료 외 기댈 곳이 없는 환자의 마지막 선택이란 점을 강조했다.신범수 기자 answe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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