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명 논설위원
21세기에 들어와 우리나라 기업 경영에서 그 전과 크게 달라진 것 중 하나로 이익의 사내유보 급증을 꼽을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차입자금 의존도를 낮추려고 하는 등 보수적 경영이 강화된 탓이다. 국제통화기금(MF)의 권유에 따라 2001년 말 적정유보 초과소득 과세제도가 폐지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자산 대비 이익잉여금 비율로 본 국내 기업 전체 사내유보율이 2001년까지만 해도 한 자릿수였으나 2002년 12%로 두 자릿수가 된 뒤 가파르게 상승해 2010년 24%에 이르렀다. 이런 추세는 대기업에서 더욱 확연하게 나타났다. 자본금 대비 잉여금으로 본 매출액 1000대 기업 사내유보율은 2000년대 초 300%선에서 2010년대 말 700%선으로 두 배 이상 급등했다. 2010년대 들어 재벌들이 이익을 내어 번 돈을 곳간에 쌓아두기만 하고 투자하지 않아 경제 전체 활력을 저하시킨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진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국회 예산정책처 추계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현재 45대 기업집단의 사내유보금 총액은 313조원에 이르고, 그 중 10대 재벌그룹의 것이 183조원으로 58%를 차지한다. 민주통합당은 과다한 사내유보금 축적에 세금을 매기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대기업 입장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반박에 나섰다. 사내유보금의 대부분은 이미 자산에 투자된 상태이므로 사내유보금을 투자로 돌리라는 주장은 이미 지어 운영하고 있는 공장을 허물고 다시 지으라는 얘기와 같다는 것이다. 또 기업이 쌓아놓고 있다는 돈은 현금성 자산일텐데 대기업 총자산 중 현금성 자산 비중은 8%로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과다 사내유보에 과세해야 한다는 주장은 기업회계에 대한 오해 내지 무지의 소치라는 얘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다시 국회를 주무대로 벌어진 이 논의는 좀더 깊이 있게 진전될 필요가 있다. 각각이 주장하는 것만 놓고 보면 양쪽 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각각이 입을 다물고 있는 부분까지 고려하면 양쪽 다 일방적인 감이 있다. 기업에 주어진 역할과 기업 경영의 현실을 두루 감안하는 가운데 보다 객관적ㆍ합리적으로 논의가 전개돼야 한다. 불투명한 경영환경 때문에 사내유보를 늘리는 게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주요 대기업의 과다한 사내유보가 국가경제 선순환을 방해하는 요인이 됨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우리나라 특유의 재벌 체제로 인해 대주주는 지분율이 낮더라도 지배력은 크다. 이 점도 이익을 배당하기보다 사내유보하게 하는 유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분명하다. 사내유보도 투자재원 조달의 한 방법이다. 따라서 사내유보 과세가 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효과는 단기와 장기에 달리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세부 쟁점들이 충분히 논의돼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선거 국면에 접어들어 국회가 마비되면서 사내유보 과세에 관한 논의가 중단돼 버렸다. 아쉬운 대목이다. 이 논의는 단기적으로 투자촉진, 내수활성화, 고용창출 등과 관련해 중요하다. 또 장기적으로는 기업 인센티브 체계 개선, 잉여가치 분배구조 조정, 증권시장 활성화 등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의 적정유보 초과소득 과세제도는 비상장 대기업 대주주가 배당해야 할 이익을 사내유보해 소득세를 피하는 행위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였다. 이와 달리 최근 논의돼 온 과다 사내유보 과세제도는 상장ㆍ비상장을 막론하고 대기업 이익의 생산적 활용 내지 환류를 촉진하기 위한 방안이다. 1차적으로는 투자촉진, 2차적으로는 고용증대와 분배개선에 효과가 있으리라는 가정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이에 대해서도 물론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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