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박태준 부장판사)는 최근 발로치스탄(파키스탄 서남쪽 지역) 출신 K씨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상대로 낸 난민인정불허처분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8일 밝혔다. 발로치스탄 출신에 대한 난민 지위가 인정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K씨에게는)'민족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우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고 볼만한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인정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파키스탄에서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소멸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K씨는 지난 1995년부터 독립운동단체 BNM(Balochistan National Movement)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2007년 비밀경찰에 총상을 입고 정부의 눈을 피해 이듬해 가명이 적힌 여권으로 국내에 들어왔다. K씨는 가짜여권이 적발돼 여수출입국관리소에 보호구금 중 난민인정 신청이 불허되자 지난해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K씨가 이름을 속인 여권으로 국내에 들어온 것에 대해서도 "독립운동에 가담한 세력에 대하여 살인, 고문 등의 박해를 가하여 왔으므로 안전하게 출국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난민인정의 부정적 요소로 삼을 수는 없다"고 봤다. 이란계 소수민족 발로치족이 살아가는 발로치스탄 지역은 60여년 가까이 독립운동이 계속돼 지난 2008년 여름에만 100여명이 사망하고 250여명이 실종, 강제 이주된 인구는 2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K씨도 정부의 의해 지난 1993년 발로치스탄 접경 카라치로 가족과 함께 강제 이주된 경우다. 법무부 등에 따르면 K씨처럼 자국의 박해를 피해 국내에 보호를 요청한 난민 신청 건수는 지난 9월말 기준 4835건이다. 2000년 43건, 2010년 423건에 불과했던 신청건수는 지난해 1011건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9월까지만 벌써 909건으로 급증 추세에 있다. '외국인 노동자 100만 시대'에 이어 한국도 본격적인 난민 유입 국가가 돼 가고 있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신혜인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공보관은 "난민 유입이 늘어나는 건 분쟁지역 등 세계적 불안이 계속되는 탓으로 보인다"며 "다만 한국이 최종 목적지가 아닌 경유지인 경우도 있어 유독 한국만 증가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난민 신청이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실제 난민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아직 드물다. 올해 9월까지 법무부 심사 및 행정법원 판결 등을 통해 난민 지위가 인정된 경우는 모두 299명, 6.1%다. 신청자가 급증했던 지난해에도 1011명 중 난민지위가 인정된 경우는 42명으로 4.1%에 그쳤다. 이처럼 난민 인정률이 낮은 배경으로는 이주근로자의 난민신청 악용 소지에 대한 우려 등이 꼽히고 있다. 정부의 처분에 불복해 법원을 찾는 경우도 꾸준히 이어짐에 따라 행정법원은 지난해 4개의 난민 사건 전문 재판부를 신설했다. 소송 당사자가 통역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고 본인의 진술 외에 상황을 입증할 근거가 뚜렷하지 않음에 따라 전문적인 심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사자에 대한 개별적인 구제 필요성이 중심에 놓임에 따라 법원의 난민 인정도 높아질 전망이다. K씨의 경우 재판 과정에서 친정부성향의 통역인이 나설 경우 사실이 곡해될 우려가 있어 재판부는 통역인 선정 과정부터 세심하게 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K씨의 변론을 맡은 배의철 변호사는 "최근에야 인권상황이 국제사회에 알려진 발로치스탄의 경우 K씨의 구체적 진술 외 특별한 증거가 없었음에도 진술의 일관성·신뢰성 원칙에 기초해 박해의 공포를 인정한 법원 판결은 국제법적 인권 수호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환영했다.정준영 기자 foxfury@<ⓒ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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