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삼스의 ‘매일 매일 기다려’, 본조비의 ‘Bed of roses’,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봄여름가을겨울의 ‘아웃사이더’. 정준영은 마치 2012년으로 잘못 떨어진 1990년대의 소년 같다. 그가 Mnet <슈퍼스타 K 4> (이하 <슈스케 4>) 결선에서 네 번에 걸쳐 부른 곡들은 전부 1990년대 ‘롹커’ 흉내를 내던 아이들의 노래방 베스트나 다름없고, 그는 딱 그 때 그 아이들처럼 노래한다. 검은색 쫄바지를 입고, 마이크를 삐딱하게 쥔 채 고음파트에서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있는 힘껏 지른다. 그리고는 하는 말. “저는 일단 로커이기 때문에 완전 로큰롤 스타일로 완전 멋지게 불러야죠” 완전 허세. 완전 오그라들어. 1990년대에도 통할까 말까 하던 말을 2012년에, 그것도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음이탈을 하는 녀석이 한다. 로이 킴이 매번 다른 장르의 곡을 선택하되, 그 곡들을 패기가 엿보이는 목소리로 자신만의 색깔을 부여하는 동안 정준영은 비슷한 곡을 비슷하게 지르는 것이 한계였다. 못 하면 ‘그것만이 내 세상’이고, 잘 하면 ‘아웃사이더’ 정도 수준. 다른 출연자들보다 두드러진 무대는 없었고, 무대에 계속 오를수록 같은 패턴의 무대가 반복된다. 심사위원들은 정준영의 고집스런 선택을 문제 삼았고, 시청자들은 부족한 실력에도 TOP4까지 오른 그에게 자격 미달이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H3><슈스케>가 원하는 것 ‘캐릭터는 아티스트, 태도는 아이돌’</H3>
심사위원의 평에는 반박하지 말고 인사해야 하고, 결선 출연자들은 제작진이 정한 스타일링과 식단을 충실히 따라야한다.
딱히 제대로 된 내용물을 보여주지 못한 청춘의 자신감은 곧 허세가 되고, 실력이 첫 번째 덕목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허세는 죄악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정준영은 ‘아웃사이더’를 부르기 직전 막대사탕을 문 채 “음이탈하지 마세요”라는 제작진의 말에 웃으며 무대로 걸어나갔다. 사전에 약속된 내용이었겠지만, TOP4가 걸린 무대에서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출연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1990년대의 소년들이 그러했듯,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신의 태도를 밀어붙이는 것은 이런 ‘롹커’들이 가진 절대적인 무기다. 그리고 <슈스케 4>는 정준영의 태도를 이번 시즌 내내 부각시켰다. 그는 예선부터 ‘4차원’이었고, ‘슈퍼위크’에서는 로이 킴과 ‘엄친아-반항아’의 라이벌 구도를 만들었으며, 탈락에서 구제 받을 때는 제작진의 요청으로 혼자 차 트렁크에 숨어 있다 갑자기 등장해 반전을 만들어냈다. 정준영과 <슈스케 4>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여기에 있다. <슈스케 4>에서 출연자들이 지켜야할 가장 큰 미션은 사실상 ‘캐릭터는 아티스트처럼, 태도는 아이돌처럼’이다. 캐릭터는 개성이 뚜렷해야 부각되지만, 제작진과 심사위원이 정한 틀은 벗어나면 안 된다. 심사위원의 평에는 반박하지 말고 인사해야 하고, 결선 출연자들은 제작진이 정한 스타일링과 식단을 충실히 따르며 외모를 관리해야 한다. 그 범위를 넘어서면 ‘슈퍼위크’에서 팀을 잠시 이탈한 이지혜처럼 비호감이 된다. 정준영은 이런 오디션에서 슬리퍼를 신은 채 결선 진출을 통보받는 자리에 나갔다. 숙소에서 마치 아이돌처럼 관리 받으며 합숙생활을 하는 <슈퍼스타 K 4>에서, 정준영은 제작진, 또는 심사위원이 정한 틀을 살짝 살짝 넘으며 프로그램의 숨통을 틔는 캐릭터였다. 그러나 결선은 매번 다른 미션을 통해 계속 새로운 스타일의 곡을 소화하는 것이 유리하도록 이끌고, ‘완전 멋진 롹커’에 대한 정준영의 로망이 고집처럼 보이게 만든다. ‘슈퍼위크’까지는 ‘똘끼’에 가까운 개성을 요구하지만, 결선에서는 아이돌처럼 제작진과 심사위원의 요구를 잘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프로그램에서 나갈 생각이 아닌 한 ‘악동’의 캐릭터는 가능해도 반항은 안 된다. 기존 가요계에 대한 대안이라는 명분으로 시작했고, 그래서 홍대의 인디 뮤지션까지 끌어들인 쇼가 점점 기존 가요계의 축소판처럼 변하고 있다. 예능(예선과 슈퍼위크)으로 캐릭터는 뚜렷하게, 하지만 태도는 대다수의 아이돌처럼 고분고분하게. <H3>정준영이 완전 멋있는 ‘롹커’가 되는 길</H3>
그래서 정준영이 TOP4에서도 ‘완전 멋있는 롹커’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청자들이 고르는 노래라는 미션의 성격상 불가능 할 수도 있지만, 남들이 뭐라건 ‘롹커’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그처럼 자신의 태도가 뚜렷한 사람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반항이다. 반항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자신감은 자신감대로, 실력은 실력대로 평가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 쇼는 반항적인 척 하는 허세는 재미있게 포장하되 진짜 반항은 용인하지 않는다. 심사위원들은 기존 가요계에서 기회를 얻지 못해 오디션 프로그램을 택한 출연자들에게 자신만의 음악세계가 너무 강한 것 아니냐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비록 허세일지라도, 가수가 자기 마음대로 노래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그러니 허세든 뭐든 질러봐라. 탈락을 걸고. 그러면 언젠가는 완전 멋있는 롹커가 될 수 있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강명석 기자 two@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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