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아버지의 등산화

[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경영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바로 성공일 것이다. 반대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실패다.기업들이 경영전략을 짜내기 위해 구름과 같은 인재를 불러 모으고, 밤낮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것도 모두 실패를 피해 성공을 거머쥐기 위한 묘책을 찾기 위해서다.마시나 가즈히로가 쓴 '전략 리플레이'란 책에 보면 "경영은 묘수로 이기기보다 악수로 지는 일이 많은 현장이다" 라는 말이 있다.아무리 좋은 전략을 짜내더라도 경영진이 어딘가에 존재할 허점을 찾아 내지 못하면 대규모 손실을 짊어지는 참극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젊은 경영인일수록 앞만 보고 달려가기 마련. 이 책의 작가는 그런 전략의 폭주 때문에 벌어진 대 참극 사례들을 수집해 실패에서 경영을 배우라고 조언한다.어린 시절 등산을 좋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주말이면 동네 여기저기와 고향 인근의 명산들을 찾아 산에 오르곤 했다. 그때 마다 아버지는 두툼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K2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K2는 우리나라 아웃도어 브랜드의 역사 그 자체다. 70년대에 재봉틀 몇 대를 놓고 시작한 고 정동남 회장은 "K2처럼 극한의 불가능에 도전하자"는 구호 아래 맨땅에 헤딩 하듯 회사를 키워 정상의 자리에 올려놨기 때문이다.그렇게 강인해 보이던 K2 브랜드가 점점 금이 가고 있다. 국내 유명 백화점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누계 기준으로 1위는 노스페이스, 이어 코오롱스포츠, 블랙야크, K2, 컬럼비아 순이다. K2의 이름은 빅3 안에도 끼지 못했다.이유는 간단하다. 2세 경영인인 정영훈 현 사장은 아버지가 만든 K2 보다는 아이돌 모델들을 앞세운 새로운 브랜드 '아이더'를 키우는데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창립자였던 고 정 회장은 브랜드를 지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지만 가장 힘든 산은 K2다."라며 극한의 불가능에 도전하자는 의미로 K2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를 이어 받아 더 키워야 하는 지금의 대표에게는 이전 도전 정신 보다 연예인들로 도배된 자신만의 브랜드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40대 젊은 2세 경영인. 젊은 세대 중심으로 바뀐 아웃도어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를 키운다는 전략은 '젊은 경영자'들이 한 번씩은 꼭 꿈꾸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것만 찾느라 확고부동한 1위 자리에 있던 K2를 너무 망가뜨린 것은 아닐까?아버지는 이제 K2를 더 이상 신지 않는다. 요즘 잘 나가는 브랜드의 화려한 디자인으로 된 암벽화를 즐겨 신으신다. 낡은 K2 등산화는 창고에서 이미 먼지가 쌓인 지 오래다."경영은 묘수로 이기기보다 악수로 지는 일이 많은 현장이다"정영훈 대표가 아버지의 유산을 먼지 구덩이에 던지면서 까지 했던 선택이 경영의 악수가 아니라 '묘수'였기를 진심으로 바랄뿐이다.이초희 기자 cho77lov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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