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후텁지근한 날씨에 밥하기도 귀찮고 혼자 식당에 앉아 저녁 먹는 것도 마뜩잖아 동네 해장국집에서 뼈해장국 1인분을 포장했다. '그래, 이 집은 김치가 맛있었지!' 아주머니한테 "여기 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또 왔어요"라는 갖은 아양을 떨며 김치도 포장해달라고 말하자 김치 대신 타박이 돌아왔다."아유, 손님들이 김치 리필해달라고 할 때마다 손이 떨려. 포장 손님들한테까지 김치를 푹푹 주고 나면 도저히 우리도 당해낼 재간이 없어. 미안해, 배추값이 올라서 그러니 이해해줘요."당최 얼마나 비싸졌기에 식당에서 김치주기 겁난다는 말까지 하는 걸까. 그래서 도전해봤다. "그래! 직접 김치를 담가보자."18일 우선 영등포시장을 찾아 재래시장에서의 배추 시세를 알아봤다. 무더위에 비까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불쾌지수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을 때 쭉 늘어선 채소가게들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배추가 없다. 상인들에게 묻자 날이 더워서 뙤약볕에 내놓으면 하루도 못버티고 시들해지는 바람에 그늘진 곳에 모아놓았다고 했다. 새벽에 물량이 들어오자마자 냉장고에 넣어놓고 그때그때 꺼내 판다는 이들도 있었다. 이쯤되면 새까맣게 그을려 겨우 부채질로 근근이 더위를 쫓는 상인들보다 배추가 '상팔자'다. 가격은 큰 배추 3포기 1망에 1만2000원, 작은 배추는 1만원이다. 배추 1포기당 최대 4000원인 셈이다. 영등포시장 상인 김모(55)씨는 "한 달 전만해도 1망에 6000원~7000원정도 했었다"면서 "거의 두배 뛴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작년이랑 비교해서는 비슷하다. 작년에는 폭우 때문에 이렇게 뛰었었다"고 설명했다. 1년 전에는 폭우 때문에, 올해는 폭염 때문에 배추값이 폭등한 것.무 가격도 급등하긴 마찬가지다. 무 9~10개입 1망에 1만3000원이다. 오르기 전까지 7000원~8000원 하던 것들이었다. 상인 한모(48)씨는 "배추, 무 뿐이간? 고춧가루며 마늘, 새우젓, 생강 다 올랐지. 이렇다보니 김치 담가먹는 것보다 차라리 사 먹는게 낫다는 사람들도 많아졌어. 배추 찾는 사람 이 많이 줄었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식당 장사하는 사람이야 어쩔 수 없이 사가는데 개인들은 반찬가게에서 많이들 사가. 배추값이 많이 올랐다고는 해도 사실 사먹는 게 더 싼 건 아니거든? 그런데도 양념값도 오르고 날도 더워 귀찮으니까 사먹는거지"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14일 기준 배추는 전년대비 9%, 전주대비 17% 올라 평균 3033원, 최고가 4500원에 달하고 있다. 무도 전년대비 9% 올랐다. 폭염에 가뭄이 겹치면서 생산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고춧가루 가격도 급등세다. 고춧가루(600g) 소매가는 1만5900원으로 전년 1만1417원 대비 40% 가까이 올랐다. 평년 7000원 수준에 비해 두배 오른 셈. 생강은 전년대비 80%가량 뛰었다. 이어 대형마트로 발길을 옮겼다. 인근 홈플러스에서는 배추 한 포기에 1900원 할인행사를 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그러나 재래시장 것보다 크기가 작았다. 상태도 무르고 찢겨 상당부분 버려야할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김치 양념에 필요한 재료를 담기 시작했다. 배추 3포기에 부추 2030원(500g), 무 1830원, 다듬지 않은 대파 2000원, 마늘 4230 원(500g), 생강 1400원(150g), 고춧가루 3만1480원(500g), 까나리액젓 3350원(750g), 새우젓 6160원(250g), 절임용 소금 2930(1Kg). 총 6만1110원이 들었다. 재래시장에서 큰 배추 3포기 살 경우 6만7410원이 든다.
시중에 파는 김치랑 얼마나 차이가 날까. 홈플러스에서 종가집 포기김치(3.7Kg)는 현재 20% 할인행사를 해 2만29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배추 한 포기 정도하는 분량. 세 통이면 6만8000원정도로 큰 배추로 직접 담가먹는 것과 3000원 차이, 작은 배추로는 1만원 차이다. 심지어 창고형 매장 롯데 빅마켓에서는 NH농협김치 깊은청 포기김치 5Kg을 1만 5990원에 팔고 있었다. 이 제품 2개(10kg)면 배추 2포기 반~세 포기 정도 될 터. 직접 담그는 것보다 오히려 절반가량 더 저렴한 셈이다. 불볕 더위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겠지만, 음식은 '손 맛'이라는 생각에 집에서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김치 만들기에 돌입했다. 처음부터 순탄하진 않았다. 상한 배추 겉잎을 뚝뚝 따며 세 번 째 잎을 다듬을 무렵, 귀뚜라미 한 마리가 배춧잎 속 깊이 눌러붙어 죽어있는 것을 보고 소리를 내질렀다. 싹싹 무를 썰다가 손을 벨 뻔하고, 고춧가루에 재채기가 멈추지 않았다. 고된 수고 끝에 맛깔스런 김치가 완성됐다. 사먹는 것보다 수고스럽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직접 만들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며 배추 속 하나를 죽 찢으며 밥에 쏙 싸먹었다. "그래, 이 맛이야."오주연 기자 moon17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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