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웬 존스와 알람브라-이슬람 디자인, 발견과 비전展
윌리엄 하비, 알람브라 궁전의 문양디자인 드로잉. 1915년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식물무늬나 기하학 곡선이 엉켜있는 문양. 흔히 아라베스크로 불리는 디자인 양식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옷이며 카페트, 벽지 등 수많은 물품들에 일정하지만 화려한 패턴들이 수놓아져 장식돼 있다. 우리나라 당초문양이나 고려청자 안료도 아랍에서 건너왔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장식미술은 이슬람 예술로부터 그 뿌리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서구 중심의 미술사로 인해 이슬람 미술은 체계적으로 역사적 토대를 일구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이미 '장식미술'만큼은 이슬람을 빼놓고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것은 1856년 영국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오웬 존스(Owen Jones)가 펴낸 '세계 문양의 역사(The grammner of ornament)'에서 증명되고 있다. 150년 전 존스가 쓴 이 책은 지금도 여전히 디자인 분야의 교과서로 불린다. 특히 이슬람의 장식문양은 현대 산업디자인에도 여전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이 책이 세상에 나올수 있었던 것은 존스가 청년시절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을 만났기에 가능했다. 알람브라 궁전은 스페인 무슬림 궁전으로 오늘날 2개밖에 남아있지 않은 중세 이슬람 궁전 가운데 하나다.국내에서 알람브라 궁전과 존스의 작품들을 통해 이슬람의 화려한 문화와 현대 디자인의 뿌리를 알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영국 빅토리아&알버트 박물관 소장품들로 노르웨이 오슬로, 스페인 그라나다, 아랍에미레이트 샤르자를 거쳐 왔다. 4개국 순회 전시다. 오는 14일부터 12월 2일까지 우리나라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 열리는'오웬 존스와 알람브라-이슬람 디자인, 발견과 비전'展이 열린다.
스페인 그리나다 알람브라 궁전 모습
◆오웬 존스, 알람브라 궁전에서 화려한 이슬람 예술을 보다= 중세 문명을 담당한 주역은 바로 이슬람이었다. 동방과 서방을 연결하며 모든 학문, 예술, 교역의 중심에 있었다. 8세기경 무렵 북부 아프리카의 무어족은 이베리아 반도를 향해 치고 올라왔다. 이슬람 세력은 14km에 달하는 아프리카 북부와 이베리아 반도를 가로는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기독교 세력인 서고트 왕국을 몰락시키며 그 후 800년간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다. 한창 이슬람 세력이 커졌던 12~14세기에는 아라비아 반도 뿐 아니라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 스페인, 터키, 인도지역까지 영역을 확장해갔다. 이들은 이처럼 곳곳에 도시를 건설했고, 이 중 하나가 바로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그라나다이다. 13세기에 착공돼 완성되기 까지 무려 260년이나 걸린 알람브라 궁전. 이 궁전은 놀라운 장식체계가 절정에 다다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궁전은 유약 처리한 타일, 조각된 벽토 그리고 조각하거나 맞붙인 나무 따위의 소박한 자재로 건물의 안팎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알람브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장은 ‘사자의 궁’이라는 이름을 지닌 방들에 있는 두 석고 볼트 천장이다. 이슬람 땅의 동부 지역에서 성자들의 무덤 천장을 장식하는 데 쓰인 무까르나 기법이 이곳에서는 둥근 하늘을 상징하기 위해서 사용된 것이다. 두 자매들의 방이라 명명되는 공간 천장에는 무려 5000개에 달하는 다양한 무까르나 무늬가 사용됐다. 무까르나 기법은 나무나 석회로 적당히 작은 조각을 만들어 일일이 벽에 붙여 장식을 하는 것을 뜻한다. 햇살이 볼트 천장의 드럼에 설치된 창문으로 스며들 때 생기는 그림자의 움직임은 별이 총총한 하늘이 회전하는 듯한 효과를 자아낸다. 오웬 존스가 1834년 이슬람건축과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처음 알람브라를 찾았을 당시에는 사정이 달랐다. 나폴레옹이 이곳을 점령했던 프랑스와의 전쟁시기(1796-1815)에는 포로수용소로 쓰이기도 했으며, 그 후에도 여기저기서 흘러들어온 사상가와 방랑자들의 거주지로 방치됐다. 초기의 관광객들은 장식을 뜯어내어 기념품으로 가지고 갔으며 지역의 통치자들은 이 궁전의 아름다운 타일을 팔아 유흥비로 사용하기도 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전반적인 복원 계획이 착수되기 이전까지 알람브라궁전에도 수난의 아픔이 있었던 셈이다. 그는 프랑스 건축가 쥘 구리(Jules Goury)와 함께 궁전에 대한 방대한 연구를 하며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구리는 콜레라에 걸려 너무 이른 죽음을 맞이했고 존스는 홀로 연구를 완성해야 했다. 이때 '알람브라궁전의 평면, 입면, 단면과 건축적 세부 사항'(1836-45)이 출간됐다. 이 책은 101가지 색을 사용한 다색 석판화로, 해설과 직접 그린 그림을 수록한 거대한 작업이었다. 이후 그는 1851년 영국만국박람회가 열린 수정궁의 실내장식 책임자로 일했고, 현존하는 디자인 자료집 들 중 가장 널리 전해지는 세계 문양의 역사를 1956년 출판하며 빅토리아시대인 19세기 영국디자인사의 발전을 도모하는 중요한 인물이 됐다.그는 수정궁 카탈로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알람브라는 그리스 장식의 우아함과 세련미를 능가한다. 무어인은 그리스인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형태를 추구했으며, 다양성과 상상력에 있어서는 그리스인보다 뛰어났다"
오웬 존스, 문양 드로잉, 1856, 50x35cm
◆이슬람 문양의 세계적인 전파= 아람미술관 수석큐레이터인 김언정씨는 "존스의 활동과 함께 19세기 당시 이슬람 문화와 예술이 유럽과 미국으로 전파됐던 것은 도로 등 교통시설확충과 젊은이들 사이에 중동여행 붐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존스도 역시 청년시절 이렇게 이집트와 스페인, 터키 등을 여행하면서 이슬람 장식문양을 접하게 된 것이다. 이슬람은 종교적으로 우상숭배를 금지해, 문양에서도 사람이나 동물형상을 잘 넣지 않는다. 나무나 꽃, 식물, 건물 모양이나 기하학적 문양이 주로 들어가며, 코란을 기록했던 아랍어 서체가 함께 장식된 경우도 많다. 특히 무어인들은 기하학적 패턴을 좋아했다고 한다. 존스의 연구와 기록, 출판 등으로 전파된 이슬람 문양양식은 '세계문양의 역사'에 담겼고 이는 현대 디자인에서 큰 전환점이 됐던 아트앤드크래프트 운동이나 프랑스 아르누보, 독일의 바우하우스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이번 전시에는 존스의 작품과 함께 크리스토퍼 드레서 등 34명의 작가들의 이슬람 미술과 관련된 유화, 수채화, 드로잉, 텍스타일, 도자기, 패널, 유리공예 등 100여점의 작품이 선보인다.문의 고양문화재단 031-960-0112오진희 기자 valer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문화부 오진희 기자 valere@ⓒ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