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시장의 변신..'닭강정·계란말이가 엽전 한 냥'

통인시장 도시락카페 '주말에만 평균 500명 방문'

손님들은 '도시락 카페' 가맹점인 통인시장 반찬가게에서 반찬 1가지 당 500~1000원을 주고 사먹을수 있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를 빠져나와 자하문 터널 방향으로 200m를 곧장 걸어가면 통인시장이 나온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이 전통시장이 요즘 젊은층들 사이에선 '마트'보다 인기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지도를 보고 찾아올 정도다. 평일 점심에는 근방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모여들고, 주말에는 이색 데이트 코스를 원하는 커플들이 손을 잡고 찾는다.통인시장 입구는 겉으로 보기엔 여느 시장과 별 차이가 없다. 유독 천장에 걸린 호랑이 걸개그림이 시원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몇 발짝 발을 디디면 이내 다른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을 만나게 된다. 바로 식판을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쭉 길게 늘어선 시장 가게들 가운데는 '도시락 카페 가맹점'이라고 적힌 작은 팻말이 붙은 곳이 군데군데 있다. 식판을 든 사람들의 발길이 멈추는 곳이 이 가게들이다.'도시락 카페'는 통인시장 상인들이 지난 연말부터 계획해 올해 1월 첫 선을 보인 서비스다. 처음 '도시락 카페'를 열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찾을까 긴가민가 했지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3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기 시작했다. 한 반찬가게 주인은 "신문에도 자주 나오게 되니까 사람들이 인터넷을 보고도 찾아온다"며 "어제도 방송국에서 다녀갔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통인시장에서 도시락 카페를 이용하려면 500원짜리 엽전을 구매해야 한다.

도시락 카페를 이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1층 이용센터에서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쿠폰인 '엽전'을 사면 직원들이 까만 식판을 건네준다. 이 식판을 들고 시장 내 반찬가게들을 돌아다니다 먹고 싶은 반찬을 고르면 된다. 500원짜리 엽전 한 두 개면 반찬 한 가지를 고를 수 있다. 마음껏 반찬을 고른 뒤 2층 카페로 올라가면, 2000원에 밥과 국이 제공된다. 1끼당 평균 5000원 정도가 든다.동그랑땡, 만두, 나물, 김치, 콩, 멸치 등 갖가지 밑반찬 가운데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장 인기있는 반찬은 계란말이와 닭강정. 통인시장에서만 12년째 반찬가게를 맡고 있는 김명자(57)씨는 "손님들이 닭강정, 제육볶음 등 고기류를 많이 찾는데 최근에는 야채와 나물 종류를 사가는 사람도 늘고 있다"며 "우리도 이런 경험을 통해서 손님들의 식성과 입맛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매주 화요일에는 '비빔밥 데이'도 열린다. 이날은 식판 대신 비빔밥 그릇이 제공된다. 손님들은 비빔밥에 섞을 나물과 계란 부침만 골라오면 된다. 원래 제공되던 종이쿠폰도 전통시장의 의미와 분위기를 살려서 한달 전부터는 '엽전'으로 바꿨다. 도시락 카페 가맹점은 총 16곳이다. 카페 문화에 익숙한 젊은층들이 일부러 통인시장 '도식락 카페'를 찾는 데는 이 같은 상인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노력이 있었다.직장인 이덕진(28) 씨는 "근처에 직장이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은 시장을 방문한다"며 "좋아하는 반찬을 직접 고를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한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 씨의 식판에는 계란말이와 멸치, 김치가 담겨있었다.

통인시장의 한 반찬가게 상인이 식판에 반찬을 담아주고 있다. 가장 인기있는 반찬은 계란말이, 닭강정.

통인시장은 1941년 6월 일제강점기에 효자동 인근 일본인들을 위해 설립된 공설시장이 모태다. 6.25전쟁 이후 서촌지역에 인구가 늘면서 공설시장 주변으로도 노점과 상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상점들이 모여 시장의 형태를 이뤄 현재의 통인시장이 된 것이다. 2005년에는 정부 보조금과 상인회비를 기반으로 현대화 시설을 갖췄고, 2010년에는 서울시의 '문화시장'으로 선정돼 대대적인 변신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도시락 카페' 아이디어도 나온 것이다.통인시장 관계자는 "이전에는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여러가지 문화 이벤트를 선보인 이후로는 방문객들이 대폭 늘었다"며 "평일에는 150~200명 정도가 오고, 주말에는 500명 가량이 방문해 시장이 시끌벅적하다"고 말했다. 특히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지방에서도 구경하러 온다는 설명이다.그러나 시장에 방문객이 많아도 여전히 상인들은 경기불황을 온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도시락 카페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 씨(53)는 "도시락 카페의 반찬을 500원씩 100명에게 팔아야 5만원이 된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같은 경기는 IMF때 보다 더 혹독한 것 같다"며 "그래도 방문객들이 많아 시장이 북적이니까 좋다"고 말했다. 조민서 기자 summe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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