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아[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지난 주말 올림픽 예선 한일전을 보고 총재직 수락을 결심했습니다.” 지난 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여자농구연맹 임시 총회에서 제6대 총재로 추대된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의 취임 일성이다. 그는 여자 농구에 대해 “박신자, 박찬숙 등 예전에 (농구를) 잘하던 선수들을 아는 정도”라며 “처음에 총재직을 권유받고 사양했지만 지난 주말 한국과 일본의 경기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라고 밝혔다. 충격을 받은 이가 어찌 최 신임총재 뿐이랴. 한국은 지난 1일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 여자 농구 세계예선 5위 결정 준결승전에서 일본에 51-79로 크게 져 5회 연속 올림픽 본선 출전에 실패했다. 아무리 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팀도 질 수 있는 게 스포츠. 하지만 28점 차 대패, 그것도 상대가 일본이라는 사실에 스포츠팬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자 농구에서 일본에 이렇게 크게 진 기억이 머릿속에 입력돼 있지 않은 까닭이다.이전에도 일본에 대패를 당한 적은 있다. 1975년 콜롬비아에서 열린 제7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결승 리그에서 62-89로 크게 졌다. 이 대회에서 일본은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을 거뒀다. 당시 한국은 5위였다. 일본에게 당한 대패에는 이유가 있었다. 대표팀이 숭의여고에 다니고 있던 박찬숙 등으로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4년 뒤인 1979년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제8회 대회에서 한국은 박찬숙, 정미라 등 세대교체 주역들을 앞세워 1967년 제5회 대회(체코슬로바키아) 이후 12년 만에 준우승을 차지했다. 글쓴이가 스포츠 기자로 일한 데에는 여자 농구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강원도 철원군 갈말면 지포리에 위치한 신철원초등학교에 다녔을 때 신문에 났던 여자 농구의 페루대회 기사를 열심히 읽었다. 지금도 당시를 또렷이 기억한다. 그 무렵 여자 농구 라디오 중계를 재미있게 들었던 것도 마치 어제의 일 같다. 해설자의 이름도 기억한다. 장이진이다. 뒷날 스포츠 기자가 된 뒤 자료를 뒤져가며 초등학교 때의 기억을 확인했다. 그때 본 기사의 배경은 제4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였다. 당시 글쓴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이 대회에는 상업은행(우리은행 전신) 단일팀이 출전했다. 대회에 앞서 상업은행은 1963년 제1회, 1964년 제2회 박정희장군배쟁탈동남아여자농구대회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며 우승했다. 제2회 대회에서 상업은행은 일본 대표인 레이온을 74-56, 73-47로 꺾었다. 이 무렵 여자 농구는 프로 레슬링과 함께 최고의 인기 종목이었다. 일본을 묵사발 냈으니까. 상업은행은 대회에서 8위에 그쳤으나 동유럽의 강호 체코슬로바키아와 연장 접전(72-77)까지 가는 저력을 발휘했다. 유고슬라비아와 57-60으로 대등한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상업은행은 하위 순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70-61로 물리쳤다. 3년 뒤인 1967년 제5회 대회에서 최우수선수로 뽑히는 박신자는 이 대회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출전한 13개 나라 선수들 가운데 최다 득점(165)을 기록했다. 초등학교 때의 또 다른 기억인 중계방송은 동남아여자농구대회 경기였다. 해설을 맡았던 장이진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농구 종목에 일본 대표로 출전한 한국인이었다. 스포츠 기자가 된 뒤 글쓴이는 농구를 맡은 적이 없었지만 늘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투혼을 발휘하며 4위를 했을 때는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4년 전 여자 배구가 2008 베이징올림픽에 가지 못했을 때 글쓴이는 ‘여자 배구 정신 차려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이제 이 말을 여자 농구 관계자 모두에게 해야겠다. 여자 배구는 이번에 런던에 간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골프팀 이종길 기자 leemea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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