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물가안정, 경제학을 비웃었다

美 물가는 왜 안정세를 유지했을까?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미국 물가는 왜 안정세를 유지했을까?2008년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이후 물가와 관련해 두 가지 서로 상이한 주장이 경제학계 및 금융시장을 지배해왔다. 하나는 1930년대처럼 불경기가 지속되고 실업률이 높아지게 되면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주장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공격적으로 경기에 대응함에 따라 수조달러의 돈이 금융시장에 뿌려지면서 물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그것이다.
21일 월스트리트저널은 2개의 서로 상이한 전망 그 어느 쪽도 시장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다를 설명했다. 실제 미국의 물가는 폭락하거나, 크게 오르는 일 어느 쪽도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 15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소비자물가상승률(CPI)는 1년전에 비해 2.3% 상승한 수준으로 FRB가 정해놓은 물가상승률 목표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소비자 물가의 안정 추세는 인플레에 민감한 국채 수익률이 낮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점과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재확인 할 수 있다.왜 많은 전문가들이 물가와 관련해 현실과 다른 전망치를 내놨을까?디플레이션 우려는 많은 경제적 자원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에 기반한다. 경기 불황이 닥치면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건물들은 임대가 안 되어 텅텅비고, 공장 역시 가동률이 떨어지게 된다. 이 경우 경제 주체들은 가격을 낮춰서라도 수요를 만들어내려고 나서게 된다. 자연 물가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반면 인플레이션 우려는 FRB가 금융시장에 돈을 쏟아 붇게 되면 돈의 가치가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예상에 근거하고 있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자연 물가는 오르는 것이 정상이다.양측 모두는 각각 저명한 전문가들의 지지를 얻었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는 벤 버냉키 FRB의장 및 자넷 옐런 부의장와 같은 FRB의 수뇌부가 동의했던 부분이다. 반면 FRB에 비판적인 전문가들은 중앙은행이 국채 및 모기지 채권 등을 사들이며 시장에 돈을 쏟아 붓다보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두 주장 어느것도 맞지 않은 것에 대해, 각각의 주장이 서로의 효과를 상쇄해줬다는 설명되 존재한다. 경기불황으로 물가가 떨어져야 하는데, FRB에서 돈을 쏟아 부은 덕에 물가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식이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현재의 물가 상황을 설명하는 데는 이러한 설명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 자체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FRB는 금융권에 자금을 공급했지만, 은행들은 대출에 좀처럼 나서지 않은 채 해당 자금을 0.25%의 이자를 받기 위해 다시 FRB에 맡겨두고 있다. 이 때문에 FRB의 기대와 달리 시중에는 자금이 제대로 돌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빈 굿프렌드 카네기멜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FRB가 금리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인플레이션을 (손쉽게) 억제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마찬가지로 디플레이션을 주장했던 FRB관리들 역시도 최근 지표를 통해 디플레이션 주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 한 예로 FRB는 지난해 4월에 올해 물가전망치로 1.2~2%, 근원물가상승률 1.3~1.8%를 내놨다. 하지만 실제 1분기 미국 노동부 발표치를 보면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분기에 비해 2.3% 늘어났으며, 근원물가 1년전에 2.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지표 모두 전망치를 넘어선 것이다. 완만하기는 하지만 물가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FRB 전 부의장을 지낸 도날드 콘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근원 물가가 당초 예상보다 높으며,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예상했던 것처럼 물가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직원들이 남아돌더라도 기업들이 임금을 동결할지언정 실제 직원들을 해고하려 하지 않는 경향을 들었다. 이 때문에 상품 가격에 대한 하방 경직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굿프렌드 역시 “디플레이션을 예상했던 주장들의 근거는 굉장히 미약하다”고 말하기도 했다.그럼 물가를 결정하는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WSJ는 물가를 결정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가 있다고 언급했다. 일반적으로 합리적 기대이론이라고 불리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물가 결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은 대중의 기대치다. 1970년대 물가가 올랐을 때는 가계가 기업 모두 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서 임금과 제품의 가격을 인상했는데, 실제 물가는 이 때문에 상승했다. 만약 가계와 기업에서 물가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면 실제 물가는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현재의 경제 상황을 보면 물가는 당분간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양쪽 모두에 대한 위협이 없는 것인 아니지만 경제위기 이후 대중들의 물가에 대한 기대 수준이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미시간대학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9년 이래로 40개월중 36개월 동안 일반 대중들의 물가 전망 예상치는 2~4%에 머물렀다. 전 뉴욕 연방은행 조사부장을 역임했던 프레더릭 미슈킨 컬럼비아대 교수는 “기대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물가 상황들을 두고 볼 때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몇 년 전에 비해 덜 위협적이 됐다. 이 때문에 FRB는 물가를 높이기 위해 덜 골머리를 앓아도 되게 됐다. 반대로 만약 FRB가 물가에 대해 더 이상 염려하지 않을 수 있다면 FRB는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오늘도 미 FRB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할지, 디플레이션이 발생할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나주석 기자 gongga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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