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인상…한전 살리려 中企 죽이나

다음 달 산업용 전기료 최대 7% 인상 전망..中企는 고심 중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박혜정 기자] "정부가 전기료를 올린다는데 어쩌겠나, 우린 약자니 당할 수밖에. 하지만 1년 새 요금을 3번이나 올리는 것은 다 죽으라는 소리지." 20일 경기도 김포에서 만난 주물업체 A 대표는 정부의 전기료 인상 방침에 대해 한숨만 쏟아냈다. 연매출 50억원 가량인 이 회사는 매년 2억5000만원 가량을 전기료로 납부하는데 영업이익은 2억원에 채 못 미친다. 전기료가 인상되면 당장 먹고 살 길을 걱정해야 할 상황인 셈이다. A 대표는 "한전(한국전력공사) 살리겠다고 중기(중소기업)를 죽이는 꼴"이라며 입을 닫았다. 다음 달 산업용 전기료가 최대 7% 인상될 전망인 가운데 중소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경영난 악화가 불 보듯 뻔한데도 사용 가능한 대응책이 마땅찮기 때문이다. 고심이 커질수록 한전을 향한 불만도 늘어나고 있다. "한전은 살고 우리는 죽는다"는 자조 섞인 넋두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B사는 요즘 연일 비상대책 회의를 열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이 회사는 월 매출 40억원가량을 올리는데 전기료는 4억원 가량을 낸다. 전기료가 5% 오르면 월 영업이익은 2000만원 정도 줄어든다. 회사 관계자는 "조명을 안 쓰든지 해서 전기료를 줄일 수는 있지만 미미한 수준"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특히 시멘트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일수록 위기감이 더하다. 시멘트 업체들은 시멘트를 생산하는 고로인 킬른을 365일 24시간 돌려야만 한다. C 업체 관계자는 "전기료가 1%만 올라도 우리에겐 큰 부담"이라며 "폐열발전설비 등 재활용 시설을 이용해 자구책을 시도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전기료 인상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해주지 않는 대기업도 중소기업을 옥죄는 요인이다. 생산단가는 오르는데 납품단가는 그대로니 날이 갈수록 경영난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반월단지공단에서 만난 주물 업체 D사는 최근 거래 완성차 업체에 단가 인상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올해는 안 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D사 관계자는 "전기요금이 원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도 반영이 안 됐다"며 "이익은커녕 직원들 급여 주는 데 급급한 실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중소기업계는 지난 9개월 만에 세 번째 전기료 인상을 밝힌 한전을 원망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적자를 해소하려면 원가절감 등 자구 노력부터 기울여야 하는데도 전기료 인상이란 손쉬운 카드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5년 연속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한전은 현재 누적 적자액만 약 8조원에 달한다. 시멘트 업계의 한 대표는 "한전이 신의 직장이라 불릴 정도로 방만한 경영을 해온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몫"이라며 "외부에 책임을 전가할 일이 아니라 본인들부터 노력을 해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영세 업체들은 직원 복지 축소, 행사 취소, 낮 시간 동안 사무실 소등 등 나름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 일부서는 산업용에 대해 전기를 많이 쓰는 만큼 많이 내도록 하는 누진제를 적용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가정용 전기료는 100kw 단위로 누진율을 적용하지만 산업용 전기에는 누진율이 없다. 우리나라 전력소비의 51% 이상을 기업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대기업의 비중이 큰 만큼 상대적으로 전기를 덜 쓰는 중소기업의 피해를 줄이자는 것이다. 조용현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용량 전기를 사용하면 더 많은 요금을 지불하고 소규모 전기를 사용하면 요금을 덜 낼 수 있도록 산업용 전기에 누진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세밀한 고려 없이 무작정 전기료를 인상해 중소기업에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종 기자 hanarum@박혜정 기자 parky@<ⓒ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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