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한다더니 독선으로 똘똘뭉쳤다” 어느 KAIST 교수의 넉두리를 흘려버릴 수 없는 이유
서남표 KAIST 총장
[아시아경제 이영철 기자] “교수의 정년보장(테뉴어) 심사 강화, 학부 모든 과목의 100% 영어강의, 성적부진 학생에게 장학금 미지급과 차등등록금 부과,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 통합, 입학사정관제 도입...” 2006년 7월 서남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취임과 함께 제시한 개혁안 주요 내용이다. 서 총장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개혁안을 밀어붙였다. 서 총장 개혁안에 KAIST 안은 물론 바깥에서도 박수가 이어졌다. 전임 러플린 총장이 내·외부인사들의 퇴임요구에 밀려 총장직에서 중도하차한 것과는 달리 서 총장은 안팎의 두터운 신망을 받으며 단기간에 목표를 수행할 적임자로 떠올랐다. ‘KAIST가 10년 내 미국 MIT대학을 따라잡을 학교’로 올라설 것이란 기대감이 넘쳤다. 이런 서 총장이 러플린 전 총장의 전철을 밟고 있다. 첫 4년의 임기가 개혁을 위한 디딤돌 다지기였다면 재임한 4년을 세계 최고대학으로 키우겠다는 서 총장이 자리에서 밀려나는 분위기다. 서 총장의 개혁을 지지하던 교수들이 앞장 서 “물러나라”고 외치고 있다. 학생들도 개혁방향이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KAIST 총장으로 6년. 서 총장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개혁 전도사’ 서남표 2006년 서 총장은 교수인원을 421명에서 700명으로, 학부학생 수도 700명에서 1000명으로 늘렸다. 또 학점 2.0 이하인 1학년 학생은 1500만원(1년)의 등록금을 내도록 하고 학점 3.0 이상인 학생은 등록금을 전액면제했다. 학부커리큘럼 개편 또한 영어수업을 전면실행했다. 창의성 향상을 위한 필수과목도 개설했다. 특히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교수에겐 강의를 주지 않고 연속 3차례 강의를 배정받지 못하면 퇴출시켰다. 실제 부교수 5명 중 1명이 종신교수직을 받지 못했다. 대신 성과를 낸 교수들엔 특훈교수임명 등을 통해 특별예우를 했다. 특훈교수는 일반교수보다 30% 연봉을 더 받고 65세 정년 이후에도 비전임으로 임용하는 특별대우를 받는다. 여기에 서 총장은 교수들에게 ‘세계적인 대학과 경쟁하려면 일주일에 60~80시간 연구해야 한다’고 권했다. 서 총장이 취임한 뒤 발표한 학교개혁에 내부구성원들은 환호했다. 과학기술계에서도 개혁선봉장으로 서 총장을 응원했다. 그의 학교개혁과 한국과학사회에 던진 변화의 메시지는 그를 국내에서 가장 효율적인 개혁가로 만들었다. 서 총장의 파괴력 있는 개혁으로 KAIST와 과학계가 바뀌는 듯 했다. 잘 나가던 서 총장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취임 2년쯤 지나서다. “개혁 분위기 조성은 좋지만 우리나라 실정을 좀 더 고려해야 한다”(KAIST 교수), “영어강의가 도움 되는 건 사실이지만 강좌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KAIST 학부생)는 의견이 팽배해졌다. 그만큼 서남표 개혁안의 부작용이 커져갔다. 당연히 내부반발도 높아졌다. KAIST의 한 교수는 “특훈교수 선정과 3회 연속 강의를 못 맡는 교수의 퇴출제도 등은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교수에 일괄적용함으로써 연구활동 활력을 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KAIST 전경
◆연임 성공하며 불만 더 커져 서 총장은 2010년 연임에 성공했다. KAIST 총장연임은 개교 39년 만에 처음이다. 친 서남표 쪽의 개혁연속성을 이유로 한 연임 찬성의견과 일방적 독선경영이란 반대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그러나 KAIST 이사회는 이사 18명 중 16명이란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이 과정에서 교수들 반발은 더 커졌다. 총장선출에 핵심역할을 했던 교수협의회가 서 총장연임엔 아무 힘도 못 썼기 때문이다. 교수협의회는 1994년 이후 총장후보추천위원회 활동을 통해 고 심상철 원장부터 2001년 홍창선 총장 선임까지 핵심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2004년부터 시작된 러플린, 서남표 총장 등 외부인사 총장 선임과정에선 교수협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다. 대학구성원과 이를 대변하는 교수협의회의 의견이 배제되면서 교수협의회는 불만이 쌓였다. 학교 안에서 ‘개혁 전도사’. ‘불도저식 개혁’ 등 서 총장의 개혁방향에 일방적, 독선적 경영이란 비판이 나오기 시작한 게 이때 쯤이다. 때를 같이 해 총장연임 후인 지난 해 초부터 넉달동안 학생과 교수의 잇따른 자살은 KAIST는 물론 우리나라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잇따른 자살, 멈춰선 개혁자살의 사정은 조금씩 다르다. 자살사태 원인이 차등수업료 등 각종 학제를 도입·운영한 총장에 1차적 책임이 돌아갔다. KAIST는 국내에서의 학교위상이 많이 흔들렸다. KAIST의 또다른 교수는 “너무 참담했다. 과학의 산실이란 자부심마저 무너졌다. 지나친 개혁이 문제를 낳았다”고 그 때를 술회했다.
지난해 4월 서남표 총장이 학생과 대화를 나누는 터만홀 앞에서 한 학생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학생과 교수들은 총회를 열고 서 총장의 개혁중단을 요구했다. 차등수업료 폐지, 영어 의무수업 변경 등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이로써 쉼 없이 달리던 서 총장의 개혁이 멈춰섰다. 기부금도 크게 줄었다. KAIST가 2012년 신입생 입학식 때 공개한 기부금 유치 현황(2006~2011년)에 따르면 ▲2006년 51억원 ▲2007년 147억원 ▲2008년 675억원으로 초기 3년간은 급성장세를 보이다 ▲2009년 378억원 ▲2010년 329억원 ▲2011년 153억원 등으로 해마다 크게 줄었다. 이 때부터 교수협의회와 서 총장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만 갔다. 서 총장이 이사회 승인을 이유로 혁신비상위에서 발표한 개선안을 바로 시행하지 않아서였다. 이 갈등은 지난해 7월15일 혁신비상위원회 26개 의결사항이 확정·발표될 때까지 이어졌다. 올 1월 교수협의회가 한 총장 해임결의문 채택관련 설문조사에서 참여교수 중 75.5%(289명)가 서 총장의 해임결의에 찬성표를 던졌다. 전체 전임교원 588명 중 절반수준(49.1%)에 해당하는 비율이 서 총장 퇴진에 적극 찬성의사를 보인 것이다. KAIST 쪽은 서 총장이 지난 11일 집무실에서 열린 부총장단회의에서 최근 학교 현안과 관련돼 발언한 내용을 12일 전격공개했다. 서 총장은 발언에서 “수많은 음해와 비방을 받으면서도 총장이 직접 나서는 것을 자제해 왔다”며 “이제 학교명예를 지키기 위해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아야 할 때”라고 말문을 열었다.서 총장은 KAIST 교수협의회(회장 경종민)에 대한 감정과 교협을 바라보는 시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더 이상 교협과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강경입장을 보였다. 그는 교협이 자신을 비방했던 내용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교협은 리더가 법률적으로 받는 권한을 자신들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근거없는 음해가 도를 넘어섰다”며 “내가 나가면 멈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러플린 총장 때도 그랬듯 사람만 바꿔서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서 총장의 입장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교수들 요구에 따라 밀려나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서 총장은 “가장 좋은 때 물러날 것”이라고 뜻을 밝혔다.시기가 언제인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약간의 차이가 났다. 교수들은 사태해결 뒤를 의미했고 학교는 지금은 아니란 말이다. 이제 서총장은 개혁 전도사에서 갈등의 불씨로 KAIST 전체를 수렁에 밀어넣고 있다. 이영철 기자 panpanyz@<ⓒ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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