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명동, 中·日관광객은 '왕' VS 내국인은 '푸대접'

▲5일 서울 명동거리에는 곳곳마다 외국인 관광객과 내국인 쇼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러나 중국인·일본인 관광객들의 쇼핑 천국으로 불리는 명동에서 내국인 쇼핑객들은 찬밥이다.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이랏샤이마세. 오네상, 미떼 구다사이(어서오세요. 구경하세요)"5일 서울 명동의 한 화장품 매장에 들어서니 매장 직원이 대뜸 일본어로 인사를 건넸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매장을 두리번거리니 이 직원은 재빨리 일본어로 제품 하나 하나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일부러 일본인 관광객인 척 할 요량은 아니었지만 의도치 않게 일본인 관광객이 됐다."어떤 물건 찾으세요? 지금 그 제품은 달팽이 크림인데 주름개선에 좋아서 많이 사가세요." 일본인으로 잔뜩 오해한 매장 직원은 물어보지 않아도 척척 설명했다. 때때로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일본어로 제품을 권했다. 이윽고 "이건 어때요?"라고 한국어로 대꾸하자 그는 "아, 한국분이시구나"라고 되뇌더니 "천천히 둘러보세요" 짧게 말하고는 곧 다른 외국인 관광객에게 돌아갔다. 한국어로 내뱉은 다섯 마디가 순간 대접을 뒤바뀌게 했다.중국인·일본인 관광객들의 쇼핑 천국으로 불리는 명동에서 내국인 쇼핑객들은 찬밥이다. 매장에는 일본어나 중국어로 된 안내방송이 나와 내국인들이 소외되는가하면 외국어에 능통한 매장 직원들은 한국어에 서툴러 내국인 대응을 소홀히 하는 식이다. 내국인들이 명동에서 푸대접을 받는 것은 한 번에 수십 만원어치씩 대량구매로 사가는 '왕손'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밀려난 탓이다.명동 화장품의 매장 한 직원은 "내국인보다 외국인들의 객단가가 더 높다"면서 "아무래도 명동 매장에서는 외국인 고객들에게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명동에만 매장 6개를 운영하고 있는 네이처리퍼블릭의 경우, 외국인 고객 비중이 전체 방문객의 약 70~80%를 차지한다. 이번 골든위크 기간 동안 명동월드점에 방문한 전체 외국인 고객 중 일본인은 55%, 중국인은 35%, 동남아 등 기타 외국인은 약 10%였다.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는 "이중 객단가는 일본인들이 가장 높고, 중국인 고객의 경우 고객 유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전년 대비 10% 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명동 내 매장들은 외국인 관광객 중심의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중국어로 된 메뉴판·일본어로 쓰인 간판 등은 명동 어디를 가든지 쉽게 접할 수 있다.

▲명동에 있는 화장품 매장들은 제품 설명서도 일본어, 중국어로 만들어 놓는 등 외국인 관광객에게 마케팅을 주력하고 있다.

더페이스샵 매장에는 마사지팩 40개를 하나로 구성한 묶음제품을 매장 가장 앞쪽에 전시해뒀다. 매장 직원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선물용으로 가장 많이 찾는 인기 아이템 중 하나" 라며 "이들을 위해 눈에 띄기 쉬운 곳에 배치해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이번 일본 골든위크동안 일본인·중국인 구매 고객에게 총 10만개의 아이패치를 증정하기로 했으며 미샤는 80%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인 고객을 겨냥해 한류 스타를 내건 패키지를 명동 매장에만 특별히 선보였다. 미샤 관계자는 "워낙 명동에 외국인 고객이 많다보니 명동에만 브로마이드를 넣은 패키지 상품을 만들었다"면서 "최근 새롭게 론칭한 향수 '로드미샤'의 모델인 동방신기를 내세워 '동방신기 패키지'를 내놨는데 출시하자마자 명동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굉장히 호응이 좋아 초도물량이 벌써 다 나갔다"고 말했다.그러나 명동을 찾는 내국인 고객들은 '역차별' 받는 것 같다고 불평했다. 화장품 매장에서 만난 김모(20)씨는 "매장 직원들이 외국인 고객에게는 친절한데 내국인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면서 "특히 매장에 외국인 단체 고객이라도 오면 내국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꼬집었다.

▲각 매장마다 일본어, 중국어로 고객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매장에서는 외국어에 능통한 매장 직원들이 오히려 한국어에는 서툴러 내국인 고객들이 불편을 겪기도 한다.

또다른 고객 배모(29)씨는 "이 매장의 직원 10명 전원이 2개국어 가능자라고 한다"면서 "그러나 간혹 현지인 직원의 경우 일본어나 중국어에는 능통하지만 한국어는 서툴러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가 있다. 더 자세한 제품 설명을 듣고 싶은데 전문용어를 섞어가며 알려주는 건 쉽지 않은지 제품 용도만 말해주고 만다"고 아쉬워했다. 외국인 위주의 마케팅이 엇박자를 내는 경우도 있다.의류전문매장 미쏘에 들어서니 중국어로 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매장 직원에게 무슨 내용이냐고 묻자 "30분마다 2~3번씩 일본어나 중국어로 된 방송이 나오는데 사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고 멋쩍어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편의를 돕기 위한 장치라지만 직원조차 생소해하는 셈이다.명동 매장 관계자는 "아무래도 명동은 상권의 특성상 외국인들에게 더 집중될 수밖에 없다"면서 "중국 현지인을 직원으로 고용하곤 하는데 이 분들이 한국어를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어서 내국인들이 다소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는 있다"고 말했다.오주연 기자 moon17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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