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네가 하다 하다 이젠 워쇼스키 감독이랑도 하는구나. 몹시 부럽구나. 건강 조심해라."'은교' 박해일이 '코리아'로 '공기인형'이후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배두나(32)에게 전하는 안부 인사다. 사실 배두나의 필모그래피는 온통 범상치 않은 영화들로 가득하다. 영화 데뷔작 '링'과 봉준호 감독의 놀라운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멜로의 왕인 고(故) 곽지균 감독의 '청춘' 등 2000년대 초반 배두나는 공포와 코미디ㆍ멜로드라마를 한번에 섭렵했다. '고양이를 부탁해'와 '복수는 나의 것'이 그 뒤를 따랐다. 영화를 처음 시작하는 배우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배두나는 내놓는 작품마다 전혀 다른 팔색조로 변신했다. 이미 21세기 초반에 벌어진 얘기들이다.이런 그를 눈 여겨 본 것은 비단 충무로 감독들만은 아니었다. '플란다스의 개'의 선머슴 같은 캐릭터 '현남'에게 반한 일본의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배두나를 '린다린다린다'에 캐스팅했다. 칸이 사랑하는 거장 코레에다 히로카즈('아무도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는 '고양이를 부탁해'로 배두나의 팬이 되어 '공기인형'의 여주인공으로 배두나를 지목했다. 끝이 아니다. '매트릭스' 트릴로지의 워쇼스키 남매와 톰 티크베어 감독이 공동 연출하는 할리우드 공상과학(SF) 블록버스터 '아틀라스 클라우드'에 배두나를 캐스팅한 이유도 '공기인형'과 '복수는 나의 것'에서 배두나가 내뿜은 강렬함 때문이다. "운이 좋았어요. 제가 20대 때 했던 영화들을 세계적인 거장 감독들이 알아보고 저를 찾는 거잖아요. 좋은 감독이 좋은 감독을 불렀어요. (웃음)"
꼭 운이 좋지만은 않았다. '플란다스의 개'때는 '검증되지 않은 배우'라며 영화 관계자 모두가 배두나 캐스팅을 결사 반대했다. N세대 대표주자로서 공중파 3사 TV 드라마와 음악 프로그램, 라디오 디스크자키 등 아이돌 스타 배두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그래. 어디 한 번 두고 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영화를 제외한 모든 활동을 스스로 접고 영화에 임했다. 대성공이었다. 과거 '블링블링' 화려한 스타 배두나는 온데간데없이 천부적인 연기력을 뽐내는 배우 배두나 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운은 아직 그의 것이 아니었다. '플란다스의 개'는 물론 이후 출연한 '고양이를 부탁해'도 '청춘'도 '복수는 나의 것'은 높은 작품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흥행 참패작으로 기록됐다. 어느새 배두나는 '저주받은' 배우가 되어 있었다. 2006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전국 1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기록하기 전까지의 얘기다.
3일 개봉된 영화 '코리아'에 배두나가 출연한 것은 흥행 배우를 갈망하는 그의 바람이 개입된 선택이다. '코리아'는 1991년 41회 일본 지바세계탁구선수권의 남북단일팀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작품. 주로 아트하우스 쪽에 무게중심이 쏠린 배두나의 기존 필모그래피와는 달리 '코리아'는 전형적인 상업 영화다. "제가 가장 마지막으로 캐스팅됐어요. 상업 영화는 언제라도 하고 싶었어요. 그 동안 제게 들어왔던 상업 영화들이 모두 캐릭터와 이야기 모두 지나치게 억지스럽고 작위적이어서 못했을 뿐이죠. '코리아'는 달랐어요. 상업 영화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어요.게다가 (하)지원 언니가 현정화인데, 제가 리분희래요. 문현성 감독에게 그랬죠. 리분희는 누가 연기해도 멋진 역할이지만, 배두나가 하면 반짝반짝 빛나는 역할이 될 거라고요.(웃음)"말 그대로다. 배두나의 리분희는 번쩍번쩍 빛난다. 배두나와 하지원(현정화 역)의 놀라운 화학반응은 철저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의 약점을 살짝 잊게 한다. 감정을 밖으로 질러대는 '동(動)' 느낌 현정화와 안으로 꾹꾹 누르는 '정(靜)' 연기 리분희는 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내러티브에 스매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런 것이 바로 배우의 힘이다. 앞으로 상업 영화 영역에서는 '괴물' 배두나 대신 '코리아' 배두나라는 말을 써도 될 것 같다. 태상준 기자 birdcage@·사진 이준구(ARC STUDIO)<ⓒ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문화부 태상준 기자 birdcage@ⓒ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